<중국이뛴다>산업별 현황:반도체-`반도체 장성` 쌓는다

 지난 4일 낮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본관 1층 회의실. 왕진화(王金華) 쑤저우 부시장은 조성중인 첨단산업단지의 현황을 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에게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면서 왕 시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반도체기술을 선도하는 삼성전자에서 투자를 늘려주십시오.” 이윤우 사장도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황해를 사이에 둔 두 나라의 첨단산업에 대한 관심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전자생산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으로 ‘업그레이드’하려 한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최대 반도체시장으로 부각된 중국에 적극 진출하려 한다. 그런데 한국은 잠재 경쟁국인 중국에 기술을 이전하는 게 두렵다. 쑤저우 부시장에 대한 이윤우 사장의 답변도 의례적인 말일 뿐이다. 한국은 이미 진출한 테스트 및 패키지라면 모를까 첨단 기술인 전공정 공장의 진출을 꺼린다.

 그렇지만 한국은 멀잖아 중국에 직접 진출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거대시장으로 성장한 이 나라에서 생산하지 않고는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텔, IBM, NEC, 모토로라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기술유출을 걱정하는 자국 정부의 반대를 뿌리치고 속속 중국에 둥지를 트고 있다. 현지 기업들도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나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생산에 들어갔다.

 모리스 창 TSMC 회장은 “반도체 생산기지가 80년대 미국에서 일본으로, 90년대 한국과 대만으로 옮겨갔으며 이번에는 중국으로 세번째 이전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중국이 10년내 마이크로칩 등 반도체 전품목에서 최대 생산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TSMC도 이달 제1공장의 설비를 매각키로 하면서 중국 업체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생산만 최고가 아니다. 인프라를 보면 기술에서도 중국은 최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월 베이징대학은 컴퓨터, 휴대폰, DVD플레이어 등에 들어가는 16·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 특허를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세계 업계는 이 기술이 아직은 어설퍼 상용화가 힘들 것으로 봤다. 예상대로 이 기술을 적용해 양산 칩을 만들었다든지 준비한다는 소식이 없다.

 선진업체와의 격차 때문에 개발조차 꿈꾸지 않는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로선 베이징대학의 발표는 어쨌든 충격적이었다.

 중국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강자로 부상했다. 낮은 인건비와 거대 시장을 이유로 한국업체를 비롯한 주요 브라운관(CRT)업체들이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TFT LCD, PDP, 유기EL 등 첨단 디스플레이 산업도 육성하고 있다. 무산되기는 했으나 퉁팡의 하이닉스반도체 LCD사업 인수 추진은 중국이 얼마나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을 확보하려 하는지 보여줬다.

 중국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목말라 하는 것은 비싸게 수입해 써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경우 자국산 제품 탑재율이 10%대에 머문다. 자국산 제품도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다국적 반도체 업체 제품이 대부분이며 제품 수준 또한 낮다. CPU와 D램 등은 모두 수입해 쓴다.

 세계 전자제품 생산대국인 중국으로선 자존심 상하는 대목이다.

 중국이 세운 반도체·디스플레이산업 전략은 이렇다.

 ‘우선 외국 업체의 투자를 이끌어내 산업 기반을 다진다. 이와 병행해 자국 업체도 키운다. 이 과정에서 인력을 양성한다. 당장은 기술력이 떨어지나 시간이 지나면 격차는 좁혀진다. 적절한 시점에 다국적 기업을 제치고 일등 업체가 된다.’

 중국은 이제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초기 단계다.

 지난해 6월 중국정부가 △소득세 5년 면세 △중국내 자체설계 개발 제품에 대해선 감세 △생산설비 수입은 면세 △10억달러 이상 대규모 원재료, 부품 수입 면세 등의 파격적인 세제를 뼈대로 한 집적회로 장려정책을 내놓았다. 1년 뒤 외국 반도체 업체들이 몰려들고 있다.

 신식산업부의 쉬 샤오톈 집성전로처장은 “올 중국내 반도체투자액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많은 500억위안으로 늘어났다”면서 “안정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중국을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는 비메모리반도체 생산국으로 육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막대한 시장과 시스템 생산능력에 첨단 제조기술을 접목시킬 경우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전자대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이를 두려워해 적성국에 대한 첨단기술 수출금지 조항을 들어 기술유출을 막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조치도 중국의 WTO 가입으로 유명무실해질 전망이다. 사실 인텔과 모토로라의 대중 투자 결정에서 확인됐듯이 제한조치도 사실상 무력해진 상태다.

 유진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규모 시장이 있어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들의 중국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한국이 반도체분야에서 중국을 계속 앞서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가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계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매력적이나 너무 가까이 가기엔 위험한’ 여인이 황해 건너편에서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다.<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인터뷰:박재욱 삼성반도체 쑤저우생산법인(SESS) 총경리 

 중국 반도체 중심지인 쑤저우시 인근 공업원구. 이 곳의 터줏대감은 놀랍게도 한국 업체다. 삼성전자가 지난 94년 12월 이곳에 생산법인(SESS)을 만들고 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이 곳에 세워진 첫 외자기업이다. 주로 반도체 패지지를 생산하며 생산규모는 월 5400만개다.

 양산에 들어간 게 96년 여름이니 꽤 오래전에 안정화했을텐데 박재욱 총경리(상무)는 “여기까지 오는 데도 힘들었다”고 말한다.

 지금이야 중국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그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모 국내 반도체업체만 해도 삼성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규모로 시작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중국 현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공장을 짓고 부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공장을 짓기 전부터 엔지니어를 교육시켰다. 현지인 40명을 한국에 데려와 8개월 동안 먹이고 재우고 가르쳤다. 통역에서부터 업무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될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단단히 준비해도 현지 문화를 몰라 허둥대는 일이 많았다.

 “그 현지인 중 20명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이직이 잦은 이 나라에서 보면 업무 만족도는 대단히 높다고 볼 수 있지요.” 박재욱 총경리는 은근히 자랑했다.

 박 총경리가 이 곳에 와서 놀란 것은 쑤저우의 관리들이다. 선입관과 달리 젊고 청렴하며 합리적이있다.

 “투자와 관련해서는 중국 공무원의 서비스가 한국보다 나은 편입니다. 관공서를 찾으면 한자리에서 20가지가 넘는 모든 서류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중국이 반도체 등 첨단 분야의 외국 기업을 불러들이는 것은 주력인 전자산업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중국인은 90년대 중반 이후 전자산업의 눈부신 발전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껍데기’만 만드는 게 아니냐 하며 당혹스러워 합니다. 반도체나 화학과 같은 기초기술도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렇지만 금방 되는 일도 아니고 중국은 외국 기업의 진출을 유도해 나중에 자신들의 기술로 흡수하려 한다.

 “여기에 들어온 선진 기업들은 누구나 이러한 중국의 전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어마어마한 시장 때문에 옵니다. 삼성 반도체도 예외는 아닙니다.”

 

 ◆중국판 실리콘밸리 

 중국의 반도체 중심지로는 베이징, 상하이, 쑤저우, 톈진 등을 꼽는다. 제각각 특색이 있다.

 베이징은 반도체 설계업체가 대거 몰려 있는 반면 상하이와 쑤저우, 톈진은 유수 다국적 반도체업체들의 생산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상하이와 쑤저우는 인텔, IBM, NEC, 모토로라, 필립스, 삼성전자 등 메이저 반도체 업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거의 붙어 있는 두 도시가 중국의 실리콘밸리인 셈이다.

 두 곳에 있는 공장들은 대부분 6인치 웨이퍼와 0.25미크론 이상의 공정을 적용하고 있다. 첨단 기술에 대한 각국의 규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아직 첨단 기술을 소화하지 못하는 중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지만 투자업체와 규모가 커지면서 8인치 웨이퍼, 0.18미크론 이하로 고도 기술이 적용되는 공장이 앞으로 우후죽순처럼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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