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socialism)나 자본주의(capitalism)가 아니라 잘먹고 잘사는 주의(goodism)다.” 중국방문 기간중 중국 국제무역촉진위원회 한 임원의 발언은 오늘날 눈부신 발전상을 보이고 있는 중국경제의 원동력이 과연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널찍하게 잘 정리된 베이징 시가지와 자신감에 찬 인파는 역동하는 중국의 오늘을 한눈에 대변한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中關村)은 명실상부한 중국 IT산업의 메카였다. 유수의 9000여개 첨단기술업체가 입주하고 있으며 1만5000명 이상의 인력이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특히 미국, 일본 등에서 공부한 1000여명 이상의 유학생이 귀국, 모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첨병역할을 하고 있어 중국정부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열매를 맺고 있었다.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인 상하이시의 발전상은 만만디라는 여유속에 숨은 중국인들의 치밀함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3단계 발전론’이나 ‘선부론(先富論)’ 등 수십년 앞을 내다보는 중국인의 장기적인 안목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1만2000여개 종합 하이테크단지로 변모한 상하이 푸둥(浦東)지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는 중국인의 땀과 열정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푸둥지구에는 현재 소니, GM 등 세계 500대 기업 중에 무려 108개 기업이 진출, 중국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천년고도 시안시 역시 고대와 현대를 잇는 중국인의 꿈틀거림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전설과 유적에 집중되는 세인의 관심뒤에 서부지역 개발의 중심으로 IT산업 발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또다른 시안시의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일례로 최근 4∼5년간 매년 100%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산업을 비롯해 위성통신, CRP, 인터넷 등 다방면에 걸쳐 급속한 기술축적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가장 무서운 힘은 우리가 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가졌던 신념과 같은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정열과 의욕이 최고지도자부터 일반대중까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1당체제에서 비롯된 정치적인 안정성과 5년∼10년 이상 같은 업무를 담당해 전문성을 가진 관료들이 중국경제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특히 외자유치 실적이 급여, 승진 등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는 중국의 경제관료체제는 기업환경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다. 점차 경제대국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은 결코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려깊게 배려하고 진지하게 다가선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기회의 나라라는 점도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한단계 진일보시키기 위한 각계의 보다 진지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중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피상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처럼 저임금의 추구나 노사분규의 도피처, 혹은 손쉬운 시장확대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이익과 고용을 창출해 양국 모두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아울러 중국경제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수집과 네크워크 구축이 시급하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성별로 한국을 연구해온 중국에 반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중국에 관한 정보는 너무나 일천하다. 중국에 진출한 대다수 기업인이 느끼는 가장 큰 고충이 바로 중국의 제도와 관행에 대한 정보부족이었다. 특히 현지진출 기업에 의해 산발적 단편적으로 수집되는 정보가 체계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중국 전체에 대한 연구보다 개별 성단위에 대한 분석이 강조돼야 할 것이다. 중국의 일개 성이 인구나 경제규모, 면적 등에서 모두 한국을 능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경쟁상대를 중국의 어느 성으로 좁혀 특성있게 대처함이 바람직하다.
중국을 비롯한 화교경제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가 양성도 시급하다. 그간 우리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 각국에 비해 화교경제권에 관한 전문인력 육성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중국 등 화교경제의 약진에 발맞추어 중국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인력 육성을 위해 중장기적인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전경련도 앞으로 한중간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지난 1일 ‘동북아경제연구센터’를 설립, 그간 산발적으로 수집되던 중국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남북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전반의 현안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가칭 ‘중국경제위원회’를 구성, 중국관련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정례적인 교류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약진하는 중국은 분명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세우고 민관이 힘을 합쳐 노력한다면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협력의 파트너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중 양국이 보완성을 살리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음으로써 동북아 발전을 도모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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