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거품붕괴와 그에 따른 장기불황으로 크게 위축돼 있는 일본은 ‘경제회생의 근거를 마련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포스트IT에 국가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2000년 모리 내각 등장 이후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민간과 연계해 초고속인터넷 국가 건설과 관련한 크고 작은 인프라 정비 계획을 입안 또는 추진하며 ‘경제대국’의 명성에 걸맞게 ‘21세기 IT 최강국’으로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고화질의 동영상을 원활히 주고받을 수 있는 제4세대(4G) 이동통신을 비롯, 차세대 인터넷의 핵심요소인 IPv6, 21세기 산업경쟁력의 열쇠가 될 것으로 주목되는 나노기술, 새로운 고부가산업으로 부각되는 로봇, ‘꿈의 컴퓨터’로 수식되는 양자컴퓨터 등 인프라에서 기반기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정부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산업계에서 연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정보통신·방송 인프라
일본은 장기침체에 빠진 경제의 재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00년 가진 국가 전략회의에서 ‘오는 2005년 1000만을 넘는 가구가 초고속인터넷을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정보사회 구현’을 국가 목표로 정했다. 이에 따라 광파이버의 유선을 비롯, 3G 및 4G 이동통신, 디지털방송 등 전방위로 최상의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동시에 누구든지 쉽게 진출해 시장경쟁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등 관계 제도도 개선하고 있다.
우선 유선에서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을 시작으로 지난해 하반기 등장한 ADSL을 거쳐 각 가정에까지 광파이버가 이어지는 FTTH(Fibre to the Home) 등의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광대역(브로드밴드)통신 인프라 정비가 추진되는 양상이다.
현재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통신망들의 전송속도를 보면 일반 전화회선을 사용한 다이얼업은 최대 56Kbps고 ISDN은 64Kbps며 ADSL은 1.5Mbps에 달한다. 이에 대해 NTT가 추진하는 FTTH는 전송속도가 10Mbps와 100Mbps 두 가지인데, 모두 기존 인프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FTTH는 지난 8월 도쿄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가 시작됐고, 당초 2010년으로 예정됐던 전국 서비스가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2005년쯤에는 일본 전역의 1000만가구에 보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통신에서는 휴대폰의 고도화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 당장 오는 10월 세계 최초의 3G 상용서비스에 착수해 이동통신 최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2006년 서비스 시행을 목표로 HDTV 수준의 고화질 동영상도 원활히 주고받을 수 있는 4G기술 개발에도 돌입했다.
일본의 4G는 FTTH에 맞먹는 100Mbps의 전송속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현행 휴대폰서비스보다 1만배, 3G보다도 200배 이상 빠른 것이다. 예컨대 CD 앨범을 다운로드할 경우 3G에서는 약 20분 걸리지만 4G에서는 수초면 된다. 일본은 이의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내년부터 연구·개발비를 정부예산에 편성키로 했다.
일본은 또 내년에 쏘아올릴 예정인 차세대 통신위성(CS) 등을 이용한 차량용 통신서비스를 강화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이동통신체제를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이밖에 방송에서는 디지털화 작업이 급진전되고 있다. 98년 CS를 이용한 디지털 위성방송으로 디지털방송시대를 연 일본은 2000년 12월 방송위성(BS) 디지털방송에 나섰다. 또 2002년에는 차세대 CS방송을 시작해 문자방송·양방향방송 등을 본격화하고, 오는 2003년에는 핵심방송인 지상파의 디지털방송에도 착수해 통신과 방송 두 분야에서 본격적인 디지털시대를 열 예정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인프라 구축을 위해 통신 및 방송법 등에 들어있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비스 요금의 저가화를 겨냥해 신규 진출과 시장경쟁 촉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일례로 NTT의 독점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통신 인프라의 의무개방을 법제화하고 있다.
◆차세대 인터넷
일본은 인터넷과 관련해 차세대 프로토콜인 IPv6의 실용화와 ‘가전왕국’이라는 국가적 산업 특성에 걸맞게 TV를 통한 인터넷, 즉 ‘t커머스’ 활성화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일본은 2005년까지 초고속인터넷망 정비를 완료하면서 IPv6도 전면 실용화할 계획이다.
일본에서는 98년 후지쯔·히타치제작소·소니·도시바·NEC 등 주요 IT와 도쿄대·게이오대 등 주요 대학 및 정부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대규모 산관학 공동연구 형태로 IPv6 개발 및 실증연구가 시작됐다. 그 결과 관련 요소기술 개발을 완료함은 물론 실용화에 충분한 노하우도 축적해 놓고 있다.
일본의 IPv6는 현행 인터넷 주소체계인 IPv4의 주소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근본 목적을 두고 있지만 가정에 보급돼 있는 모든 전자기기 각각에 주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즉 PC뿐 아니라 TV·냉장고·전자레인지 등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차에 들어있는 인터넷 단말기도 독자의 주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미 NTT 산하 데이터통신 자회사인 NTT커뮤니케이션스 등 일부 업체가 IPv6 기반 통신서비스를 추진중이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도입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 쪽에서는 히타치·NEC 등이 IPv6 라우터를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디지털방송 기반 t커머스도 활발하다. BS방송의 문자방송 채널을 통해 시청자들이 리모컨으로 컴퓨터나 가전제품·식품 등을 사거나 잔액·이체 등 간단한 업무를 볼 수 있는 초기 단계의 양방향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차세대 CS방송이 등장하는 내년에는 t커머스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미쓰비시상사·NTT커뮤니케이션스 등 대형업체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내년에 이 사업에 뛰어들 예정이며, 마쓰시타전기산업·도시바·히타치 등 대형 IT업체들도 내년 사업추진을 목표로 t커머스 플랫폼회사를 설립했다. 특히 지상파 디지털 본방송이 시작되는 2003년에는 t커머스 보급도 본격화, 시장이 급팽창할 것으로 보인다.
◆기반 및 응용기술 개발
일본은 21세기 국가 산업 경쟁력의 열쇠로 나노기술을 주목하고, 산관학계에서 연구개발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10억분의 1m라는 극미의 세계를 다루는 나노기술은 재료, 생명공학, 전자, 환경·에너지 등 모든 산업 분야에 응용되는 기술로 물질 내부 또는 표면구조를 제어해 새로운 기능을 창출하거나 기존 기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며 산업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이 나노기술에 본격 뛰어든 것은 지난해 1월 미국이 국가나노기술전략(NNI)을 마련하고, 2001년 연방예산에서 최우선 사항으로 다룬 데 자극을 받고 나서다.
일본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중점 과학기술 연구 분야의 하나로 나노기술을 정하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개년 계획으로 ‘재료나노기술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이 프로그램의 연구체제는 차세대반도체연구센터, 마이크로 나노기능 광역발현연구센터, 고분자기반기술연구센터, 신탄소재료개발연구센터, 시너지머티리얼연구센터 등 여러 전문분야로 세분화돼 있다. 이의 운영을 위해 일본 정부는 내년 3월 말 끝나는 2001 회계연도 예산으로 미국 예산(4억9500만 달러)에 맞먹는 518억엔을 확보해 놓고 있다.
산업계에서도 나노기술 연구개발이 활발한데, 특히 IT업계에서는 NEC의 나노 연료전지 등 나노기술을 응용한 개발성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나노기술 관련 주요 특허업체를 보면 NEC·히타치·마쓰시타전기·NTT·미쓰비시전기·후지쯔·도시바·캐논·소니 등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차세대 응용기술 분야로 천문학적인 계산도 수초에 마치는 양자컴퓨터를 비롯, 유기EL과 COP(Chip On Pannel)로 대표되는 차세대 표시장치, 꿈의 광원으로 불리는 청색반도체레이저, 소니의 아이보로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퍼스널로봇(일명 가정용 로봇) 등을 주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퍼스널로봇에 대해 일본은 정부 차원의 지원을 쏟아부으며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은 산업용은 물론 가정용 로봇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소니가 내놓은 아이보를 들 수 있는데,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어 이 회사의 주요 수익원이 되고 있다. 또 혼다는 사람과 똑같이 두 발로 걸어다니는 2족 보행 로봇 ‘아시모’를 선보여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밖에 NEC가 개발한 사람과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로봇 ‘파페로’ 등도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로봇산업을 더욱 발전·육성시키기 위해 ‘21세기 로봇 챌린지’ 프로젝트를 최근 가동했다.
이 프로젝트는 재난현장의 복구나 환자 간병 등 고도의 도우미 로봇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인공지능(AI) 등 로봇에 필요한 기술 개발을 벌이는 업체에 자금을 지원한다.
◆바이오기술
인간게놈지도 완성을 계기로 일본에서도 바이오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유전자 성질을 즉시 파악할 수 있게 해 병 진단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DNA칩 분야에 힘을 싣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와 관련, 경제산업성과 후생노동성이 산학 연계의 DNA칩 공동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DNA칩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올해부터 3년에 걸쳐 30억엔의 예산을 확보해 대학과 기업이 추진하는 DNA칩과 그 제조장치, 해석용 소프트웨어 등의 공동개발을 후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자국의 장점인 미세가공 기술 등을 활용해 저가로 DNA칩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국산 기반기술을 정비, 이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미국세를 따라잡을 방침이다. 경제산업성은 일본 기업의 반도체 가공기술이나 프린터 제조기술 등을 응용하면 1개에 수만엔이나 하는 미국 제품보다 저렴한 칩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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