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장부인 뉴욕과 워싱턴에서 11일 오전 발생한 사상 초유의 테러사건은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벌써부터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뉴욕 증시가 주가 폭락을 우려해 문을 열지 않았으며 런던 증시는 테러소식이 전해진 직후 5%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미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테러사태가 가뜩이나 어려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미국 경제를 본격적인 침체상태로 빠져들게 할 가능성이 있음을 잇따라 제기하며 우려하고 있다. 이에따라 이번 테러사건은 지난 10년간의 탄탄한 고성장을 접고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미국 IT산업에 유탄이 될 전망이다.
미국 심장부에서 한낮에 발생한 이번 사건은 세계최강 미국의 보안시스템이 테러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전세계에 보여주며 미국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전 법무부 국내 치안담당 부사장었던 마틴은 “이번 사태로 미국의 보안상태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미국 IT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테러사건이 단기적으로는 미국 IT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부와 민간기업의 전산시스템 향상(업그레이드) 붐을 초래하면서 시스템통합(SI) 및 보안경비 업체 등을 중심으로 더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 미 기업들은 이번의 테러사건을 계기로 전세계에 산재한 자사의 건물과 직원, 그리고 공장 등의 시설에 대해 보안을 강화할 것으로 보이는데 CNN은 “93년에도 세계무역센터에서 테러사건이 발생해 이곳에 입주한 대기업들이 전산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 사례가 있다”고 전하고 이번에도 비슷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본다고 보도했다. 세계적 보안업체 핑커톤앤드버스의 짐 맥널티 부사장도 “포천 500대 기업들이 이번 테러를 계기로 자사 직원과 건물 등을 보호하는 데 연간 1000만달러 이상을 더 쓰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포천 500대 기업 중 100개사를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경비전문컨설팅업체 코포레이트리스크인터내셔널의 숀 맥위니 사장도 “대기업의 경우 평균 매출의 4, 5%를 보안시스템에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의 비용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 25층과 26층에 판매 사무실을 갖고 있던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이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인터넷 콘텐츠 분배 업체인 아카마이테크놀로지의 공동 창업자 대니얼 레윈과 광장비 네트워크업체인 MRV커뮤니케이션의 최고금융이사(CFO)인 에드먼드 그레이저 등이 피랍된 비행기에 타고 있다가 사망했다.
○…지난주 8월 실업률이 4.9%까지 치솟은 미국 경제가 예상치 못한 테러공격으로 또한번 휘청거리게 됐다. 소비와 투자, 증시의 위축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경제는 이번 테러사건으로 각 부문의 경제활동이 더욱 위축되면서 경제 전망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사건이 있기전 월스트리트저널은 자체 조사결과를 인용해 미국의 올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 전망치를 종전의 1.3%에서 0.7% 하향 조정했다. 한 경제 전문가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경제 침체가 올 확률이 테러공격 후 몇 배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제전문가도 “이번 테러는 단기적으로 미국 경제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며 아울러 자유로운 기업 활동의 제한도 예상된다”고 밝히며 “특히 세계경제 전반의 심리적 위축이 더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미 경제 성장의 3분의 2는 소비 지출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인데 미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게 될 경우 한국은 물론 유럽이나 일본의 경제 회복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테러공격으로 그동안 컴퓨터시스템 업그레이드에 더딘 걸음을 보여온 미 국무부가 비난의 화살을 받게 됐다. 국무부는 92년 재외 공관과의 통신 등을 강화, 외부로부터의 테러를 막기 위해 5억3000만달러를 투입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내용은 260개의 대사관 전산시스템 중 228곳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것이었지만 그동안 110개만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올초 국무부의 현안 중 하나가 전산시스템 업그레이드라고 밝힌 바 있다.
○…런던 증시는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이 발생한 이후 5% 이상 급락하는 폭락사태를 맞이했다. 딜러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패닉성 매도에 나섰다. 이날 FTSE100 지수는 전날보다 287.70포인트(5.72%) 하락한 4746에 마감, 거래량은 270억주에 달했다. 크레디 리요네 증권사의 투자전략가 마틴 브루커는 “충격적인 테러공격 소식은 증시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미 테러의 영향으로 12일 도쿄 주식시장의 닛케이 평균주가지수 1만선이 붕괴됐다. 도쿄 시장은 평소보다 30분 늦게 장을 열었으나 개장 직후부터 매도주문이 몰려, 20여분 만에 지수가 9617.44로 675.51포인트 떨어졌다. 닛케이 지수 1만선 붕괴는 84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홍콩 증시도 이번 사건의 영향으로 주가지수 1만선이 힘없이 무너졌다. 오전 10시에 개장과 함께 1만선이 붕괴됐으며 30분 만에 754.2포인트가 빠져 9663.14를 기록했다.
○…테러사건에 대한 뉴스 수요의 폭증으로 미국 주요 언론 및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접속이 폭증하며 접속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뉴욕 통화량이 폭주하고 있는 가운데 언론사의 접속 건수도 사건발생 직후 급증세를 보였는데 검색엔진인 구글의 경우 자사의 사이트를 방문하는 네티즌에게 라디오나 TV를 이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최대 포털업체인 아메리카온라인(AOL)의 실시간 메신저 서비스도 산발적으로 이뤄졌다.
가장 인기있는 뉴스사이트 중 하나인 MSNBC닷컴은 접속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그래픽과 사진 등을 제거하기도 했다.
○…뉴욕에는 11일(현지시각) 친지들의 안부를 묻는 전화가 폭주해 이 일대 전화통화가 두절되는 등 큰 혼란을 겪었다. 테러공격이 감행된 이날 오전 맨해튼에서는 사고 지역인 세계무역센터에서 벗어나 외곽으로 대피하던 뉴욕 빌딩가 직원 중 상당수가 휴대폰 통화를 시도하느라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무역센터 북쪽으로 4마일 가량 떨어진 57번가의 뉴스위크빌딩 내 상점에서 작업을 하던 전미통신노동조합(CWA)의 크리스 해루스는 “열 번이나 전화를 시도한 끝에 겨우 두 차례 통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화회사들은 맨해튼 근무자들이 외곽 지역으로 거는 전화통화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비상전화 회선의 불통 사태를 막기 위해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전화를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들어서면서 안부를 묻는 전화통화가 줄어들면서 통화 성공률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미 최대 이동통신업체인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스는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공격 직후 선포된 비상사태 기간동안 맨해튼 지역에 있는 자사 공중전화 4000대를 시민들에게 무료 서비스하기로 했다.
버라이즌은 11일(미국시각) 발표문을 통해 “테러공격 직후 뉴욕과 워싱턴의 통화량이 평소의 1억1500만회(호), 3500만회보다 각각 두 배 가량 급증해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무료 전화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며 “4000대 무료 전화로 평소 통화량의 1, 2배 가량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무료 전화서비스는 뉴욕, 워싱턴과 사용계약을 체결한 버라이즌 공중 시내 전화기에만 해당되며 호텔 등 민간시설에 설치된 전화기는 제외됐다. 버라이즌은 비상사태 기간동안 하루 최고 통화건수가 평소보다 50∼100% 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자우편과 인스턴트 메시지는 다른 지역과의 교통은 물론 유무선 전화통화가 두절된 맨해튼 지역 사람들이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세계무역센터에서 10블록 떨어진 월스트리트가의 27층 건물에서 일하는 인터넷전략 컨설턴트인 티모시 브룩스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가 무역센터 건물과 충돌한 것을 보고 울거나 기절했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이 친지에게 자신의 생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연락을 취하려고 애를 썼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인스턴트 메시지를 사용해 친구들에게 연락했으며 그들에게 가족한테 (내가 무사하다는) 전화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덧붙였다.
○…뉴욕의 명물이던 세계무역센터가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이 건물과 관련한 물건들이 벌써부터 e베이 등의 경매사이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이번 재앙과 관련한 도메인명을 팔려거나 건물의 잔해를 구하려는 시도도 발견됐다. 실제 세계무역센터를 배경으로 한 사진, 포스터, 엽서 등이 e베이에 매물로 나왔으며 엽서 크기의 무역센터 그림과 무역센터 그림이 새겨진 한쌍의 큐빅 가격이 각각 250달러에서 41달러대에 형성됐다.
2년간 무역센터에서 일해왔던 신시아 마랠란은 “맨해튼 전경을 담은 포스터를 100달러에 구매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e베이 등은 이같은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감시에 들어갔으며 일부 품목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또 로이터는 이날 뉴욕의 일부 사람들이 무역센터와 관련 있는 품목을 매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월드트레이드센터닷컴(worldtradecenter.com)’ 소유자는 사이트를 없애고 대신 URL을 기념이나 다른 적당한 목적을 위해 기증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겨놓는 등 미담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에는 이번 테러를 보는 네티즌의 의견이 물밀듯 올라오고 있다. 테러에 대한 배후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채팅방이나 관련사이트 게시판에서는 ‘범인이 누구이고, 배경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아랍의 과격단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언론 보도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랍인을 죽이자’ ‘아랍인에게 핵폭탄을’ 등 아랍에 대한 과격한 어구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아라비아닷컴(arabia.com)’ 사이트에 의견을 올린 ‘라이온’이라는 ID의 네티즌은 ‘마침내 아랍인들이 미국에 상륙했다. 여러 지역으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집조차도 안전한지 살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힘은 이제 종말을 고하는가’라는 표현을 구사했다.
반면 ‘이번 사태로 많은 아랍국가들이 입게 될 고통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젬피)’이라는 신중한 의견은 소수다. 2700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야후의 ‘이슬람오픈포럼’이라는 동호회에는 ‘아기들도 죽이는 이슬람교도들이 일을 냈다. 모든 이슬람교도들과 이슬람사원을 미국에서 쓸어내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라덴을 체포하자’라는 과격한 내용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이슬람그룹 역시 이번 테러를 비난하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내 아랍인을 속죄양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또 ‘밀리터리닷컴’의 게시판에서 네티즌은 테러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 미국의 적절한 반격을 촉구하고 ‘반 테러리즘군’을 창설하자는 의견을 제기했다.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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