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술을 굳이 분류하자면 회로설계와 공정 분야로 나뉜다.
회로설계는 속도와 처리용량 등 칩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며, 공정기술은 이를 구현하기 위한 프로세스 개선작업이다.
두 기술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어느 한쪽만으로 기술이 완성되지 않는다.
속도를 높이거나 용량을 크게 하는 데 있어 기존 반도체 재료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높아 두 기술은 얼마 전까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최근 1㎓ CPU가 나오고 1Gb 메모리가 나오고 있다. 그것도 기존 재료만 갖고 이룬 성과여서 기술 한계가 있느냐는 의문이 모처럼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재료 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머잖아 10기가 CPU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이 다시 불붙고 있다.
공정기술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회로선폭을 미세화하는 디자인 기술만 해도 내년에나 상용화할 것으로 예상되던 0.12∼0.13μ 공정이 이르면 올해 안에 메모리업체들을 시작으로 도입될 전망이다.
마의 벽으로 여겨지는 0.10μ도 감광액 등 새로운 기술 개발로 인해 조만간 상용화할 전망이다. 또 알루미늄 대신 구리를 사용하는 공정기술도 IBM 등 선도업체들의 노력으로 기술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불황기를 겪으면서 반도체업체들은 얼마나 싸게 제품을 만드느냐 하는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기술이 병행된다. 하나는 웨이퍼를 크게 하는 기술이며, 또다른 하나는 같은 크기의 웨이퍼에서 칩을 더욱 많이 생산하는 기술이다. 후자는 미세공정기술이며, 전자는 300㎜ 웨이퍼 공정기술이다.
300㎜ 웨이퍼 공정기술은 거의 모든 업체가 개발 중이다. 특히 수탁생산(파운드리)업체인 TSMC와 인텔 등이 이 기술의 상용화에 적극적이다. 그렇지만 올들어 불황이 극심해지자 이에 대한 설비투자가 다소 지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업체들이 이르면 올해 안으로 시험 생산라인을 운영하는 등 300㎜ 웨이퍼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어 내년께는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세공정기술은 0.14∼0.15μ 기술이 올해부터 본격 상용화해 내년부터 주력기술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같이 아예 0.12∼0.13μ 기술을 조기에 상용화하려는 기업도 있다.
반도체장비업체들은 소자업체들의 300㎜ 웨이퍼 투자가 지연되자 미세공정기술에 대한 수요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공정기술의 성격상 리소그래피 장비, 테스트 및 패키징 장비 등 일부 장비 수요만 활발한 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회로설계와 공정기술을 모두 장악한 업체가 마지막 승자가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비메모리업체들은 회로설계기술이 우수한 반면 한국 업체를 비롯한 메모리업체들은 공정기술에서 크게 앞서 있다. 비메모리업체들은 공정기술에 대해 장비업체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으며, 메모리업체들은 비메모리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회로설계기술을 확보하려고 한다.
국내 메모리업체들의 미래가 그다지 어둡지만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독보적인 공정기술에 회로설계기술만 접목되면 인텔과 같은 초우량 반도체업체로 우뚝 설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가 국내외 회로설계 전문벤처업체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때늦은 감은 있으나 국내 반도체 기술력의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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