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도 `하이닉스 살리기` 제동

 유럽 반도체업계가 하이닉스에 대한 채권단 지원문제를 들춰내기 시작해 하이닉스 문제해결의 새로운 돌발변수로 떠올랐다.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과 일본업계의 잇따른 제소압력은 채권단의 하이닉스에 대한 지원을 차단해 고사시키겠다는 것”이라면서 지원이 이뤄질 경우 본격적인 통상마찰로 번질 것으로 전망했다.

 ◇배경=제소를 추진하는 유럽반도체협회의 한가운데 독일 인피니온이 있다. 이 회사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D램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로 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4위 업체다.

 인피니온이 하이닉스 문제를 거론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초 인피니온은 자국 정부를 통해 하이닉스에 대한 정부와 채권단의 지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렇지만 곧 수그러들었다. 당시 하반기쯤이면 시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하반기에 들어서도 시황이 개선은커녕 더욱 악화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이닉스에 대한 추가 지원이 논의되자 하이닉스의 존재 자체가 달갑지 않은 인피니온이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것으로 업계는 풀이했다.

 ◇거세지는 외풍=유럽의 제소 움직임으로 채권단의 하이닉스 지원은 본격적인 무역분쟁거리로 떠올랐다.

 마이크론과 미국정부의 압력은 특정 국가의 이기주의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인피니온과 유럽연합이 끼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무역분쟁으로 확산된다.

 더욱이 우리로선 자국이기주의로 미국의 통상압력을 매도할 명분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압력에 직면해 한발 물러선 우리 정부는 이번 유럽연합의 가세로 인해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채권단 움직임과 전망=하이닉스 지원과 관련, 미국과 유럽 반도체업체들이 국제기구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채권단은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하이닉스를 살려 손실을 줄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지난 5일 한빛은행 이덕훈 행장은 “하이닉스가 회생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만큼 신규지원이 필요할 경우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채권단은 정상적인 이익을 얻기보다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말해 이같은 분위기를 이끌었다.

 투신권도 은행권의 합의가 이뤄질 경우 동참하겠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투신권은 법정관리로 갈 경우 손해가 막심해 회사채 만기연장 조건이 적절하다면 지원할 방침이다. 특히 외국계 금융기관으로는 유일한 채권은행인 씨티은행도 원칙만 공정하면 지원할 뜻을 밝혔다. 채권단의 하이닉스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지원 이후가 문제=유럽 반도체업계는 채권단의 지원 자체를 문제삼을 것으로 보인다. 반덤핑제소 압력을 펼치려는 마이크론에 더욱 직접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따라서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정부 입김이 미치는 채권은행은 아무래도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예상대로 채권단의 지원이 성사되겠으나 그 규모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지원 이후도 문제다. 현 시황을 고려하면 하이닉스는 이번에 지원을 받아도 내년에 또다시 유동성위기가 생길 게 뻔하다.

 유럽반도체협회가 지원논의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제소 방침을 현지 언론에 흘린 것은 지원을 중단시키는 것보다도 일단 지원규모를 최소화해 하이닉스를 계속 궁지에 몰아넣겠다는 의도도 내비쳤다. 채권단이 일단 지원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면서 이제 하이닉스 문제는 무역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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