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e청사진` 그룹들이 변하고 있다>(12)금호그룹

 넥타이부대라는 말이 화이트칼라를 대신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율복장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기업 중 하나가 금호다. 흔히 상하의 옷 색깔을 다르게 입는 ‘콤비’조차 찾아볼 수 없다. 기업들이 90년대 중반 입사시험에 한문과목을 포함시킬 때도 금호는 일찌감치 한문시험을 보고 있던 터다. 금호 관계자는 “이 두 가지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이 정도면 금호에 붙어 있는 ‘국내 최대의 보수기업’이라는 호칭은 틀리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금호에는 ‘아침자율학습시간’이 있다. 직원들이 부르는 별칭이 아닌 최고경영자도 사용하는 공식 용어다. 출근후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이 시간 동안은 신문을 보든 자료를 검색하든 외국어학습을 하든 ‘자기 시간’이다. 뿐만이 아니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기업내 ‘성희롱방지지침서’를 만들었다.

 금호 임직원이 보수적이라는 외부의 평에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은 이렇게 오랜 시간 만들어놓은 금호 문화가 외곬만은 아니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보수라는 말 대신 ‘클래식 문화’라는 말을 권한다. 문제는 금호만의 이같은 문화가 신속한 의사결정과 발빠른 변신이 필요한 21세기 경영에 어떻게 작용하느냐다.

 ◇항공 뒤 숨어있는 바이오산업=올초 국내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대 사건이 있었다. 금호가 식물에서 추출해 개발한 신약(항암제)이 발표된 것이다. 국내 바이오산업이 대부분 동물학에 치우쳐 진행되고 있는 틈새에서 금호의 이같은 성과는 국내 바이오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광주과학기술원내 10여명의 인력으로 설립된 금호생명환경과학연구소가 출발한 것은 95년. 바이오산업이 차세대 유망산업의 하나로 부각되며 너도나도 뛰어든 시점이 최근 몇 해 전부터라는 점을 상기하면 당시 70억원을 투자해 사업을 시작한 금호의 선택은 분명 빠른 것이었다. 그 결과 97년부터 2000년 4월까지 총 36편의 논문이 각종 국제저널에 게재됐으며, 99년에는 세계 유수의 과학지인 ‘네이처(Nature)’에 식물광신호전달에 관한 논문이 금호라는 이름을 통해 소개됐다. 또 까다롭기로 이름난 미국특허를 지금까지 5개나 취득했다.

 ◇택시에서 항공까지=지난 46년 광주에서 시작된 택시 2대의 운행이 금호의 모태다. 국내 기업들의 유관사업으로 사업을 확대했듯 금호 역시 택시에서 버스(여객사업)로, 이후 고속버스로 운송사업의 규모를 점차 확대했다. 이후 타이어사업과 타이어 제조에 필요한 합성고무 제작을 위해 화학사업에 진출했다. 주로 합작형태로 추진된 화학사업은 금호가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70년대까지 육로운송사업과 유관사업으로 꾸준히 확대해온 금호가 지금의 그룹 모습으로 일대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88년 제2항공사업자인 아시아나항공 사업을 획득하면서다. 화학산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은 당시 30대 그룹 중 재무건전도가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받을 수 있게 했으며 그 덕으로 항공사업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설립은 자산규모 기준 국내 10대 그룹으로 진입, 금호그룹을 만든 초석이 됐다.

 물론 이런 사업확장은 97년말 부채비율이 1019%에 이르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IMF 이후 금호 역시 구조조정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32개사까지 늘어난 계열사는 합병과 지분매각, 청산을 통해 2001년 현재 17개사로 축소했고, 그 덕에 부채비율을 200% 이내로 끌어내렸다. 또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약 3억달러 이상의 외국자본을 유치했다. 자산 및 지분매각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디지털 영역으로 진입 난제=금호는 항공을 위시한 운송사업부문을 비롯해 타이어·석유화학·건설·금융사업부문 등 5개 영역에 주력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수익향상을 도모할 계획이다. 문제는 항공사업을 계기로 일대 도약한 금호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디지털 사업영역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타 기업보다 바이오사업 영역에 대한 도전이 빨랐지만 당시 그와 함께 추진한 정보통신 영역진출은 실패로 귀결됐다. 선경, 포철 등과 경쟁했던 제2이동통신 사업권 경쟁과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고, 이후 위성통신서비스를 겨냥해 금호텔레콤을 설립했으나 이 역시 시장이 열리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바이오가 중장기 사업이라면 통신은 수익창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금호에는 큰 시련이었다.

 여기에 국내 기업들이 디지털 사업영역으로 진출을 앞다퉈 추진한 지난해에도 금호는 대열 중심에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LG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e마켓을 구축했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다른 e마켓에 비해 어려움이 크다. 그룹의 운수사업을 염두에 둔 IT 기반의 제3자 물류사업 역시 중도 포기된 상태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금호의 일련의 실패에 대해 금호가 자랑으로 여기는 문화적 요소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항공사업 진출이야 무엇보다 안정적인 자금을 바탕으로 이뤄낼 수 있었지만 금호가 제3의 도약을 노렸던 정보통신이나 디지털분야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속단하기는 이르다. 절반의 성공으로 그쳤지만 바이오와 정보통신 등 신규사업으로 진출을 직접 진두지휘했던 박성용 명예회장을 비롯해 박정구 그룹 회장, 아시아나항공을 이끄는 박삼구 부회장, 금호석유화학의 박찬구 사장 등 4형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평이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금호그룹 현금 유입액 현황 (단위:백만원)

 구분 내역 금액

 타이어 매출채권 ABS발행(기입금) 110,000

 건설고속 일산상가 E마트 매각(기입금) 32,000

  용인 신봉리 APT 부지매각(기입금) 86,000

 항공 항공기 리파이낸싱(기입금) 153,600

  매출채권 ABS 발생(기입금) 300,000

 기타 회사 자산매각 등 203,500

  ABS 발행예정 178,000

 총 유입액 1,063,100

 *지출예정:2001년 회사채 상환액 2950억원 중 연장분 800억원 제외한 2150억원을 갚고, 나머지 유입금 모두 부채상환에 사용 예정.

 

 ◆금호그룹 오프라인 사업의 인터넷 영역 진출 현황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트레블포털 설립

  옥션과 공동마케팅

  클릭TV 제휴

  한솔CSN 마일리지 제휴

  웹투폰 지분참여 및 공동마케팅

 금호산업(금호타이어) 제스퍼오터 지분참여

 금호케미칼 화학 e마켓 켐크로스 지분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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