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자정 결의와 청정방송

◆김정기 방송위원장

 

 작년 8월 2일 KBS·MBC·SBS 등 방송3사 사장단은 방송의 선정성·폭력성을 추방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5개항의 자정결의를 한 바 있다. 방송위원회가 주선한 간담회에서 이루어진 이 자정결의는 △방송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선정적·폭력적 내용의 지양 △주시청시간대의 오락프로그램이 지나치지 않도록 자제 △청소년을 위한 건전한 프로그램의 개발 △가족 시청시간대에 유익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 방송 노력 등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더구나 이 자정결의가 헛된 구호가 되지 않도록 방송사 사장단은 자체심의를 강화하여 선정적·폭력적인 장면이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고 다짐했다는 점은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방송위는 그동안 이 자정결의의 이행 여부를 면밀히 주시해 왔다. 결론적으로 자정결의는 충실히 이행되지 못하였다고 방송위는 평가할 수밖에 없다. 방송사에 따라 부분적으로 개선이 이루어진 점도 있었지만 자정결의 이전과 이후를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비교해 볼 때 다소간 변화의 폭은 있었지만 미흡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방송위의 전반적인 평가다.

 나는 방송사들이 모처럼 다짐한 자정결의를 지속적인 노력으로 충실히 이행해 줄 것을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가 메아리 없는 외침만은 아니라는 현상이 최근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선 KBS는 그동안 끊임없이 잡음을 일으켜 왔던 가요순위 프로그램 ‘뮤직뱅크’를 지난달 말 없애기로 결정한 일은 공영방송으로서 품위를 지킨 장한 일이다. 그동안 방송연예계의 ‘회색지대’로 치부되어 왔던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종지부를 찍는 장례식에 MBC는 물론 SBS도 동참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한 MBC는 지난 3월 새 사장이 자체심의 강화를 지시한 뒤부터 방송위의 심의제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즉 방송위 제재건수는 지난 4월과 5월에 5건씩, 6월에는 1건으로 줄어들었다가 7월에는 1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MBC에 대한 제재건수가 줄어들었다는 점에 박수를 치지만 그보다는 방송위 제재를 사시로 보았던 행태에서 자체심의 강화를 통해 방송위 제재를 극복하겠다는 자세로 전환한 것에 대해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같은 맥락에서 이달초 SBS의 예능국 프로듀서들이 중심이 돼 ‘하반기 심의지적 제로를 향한 우리의 다짐’이란 자정선언문을 낸 것도 반갑기 그지없는 자세변화다. 이 자정결의는 ‘폭력을 미화한 내용, 성에 대한 선정적 묘사’ 등을 척결한다고 다짐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방송위의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을 준수하여 방송이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최근 이러한 방송사들의 움직임이 과연 자정결의를 넘어서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청정방송’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어떻든 나는 우리 방송이 청정방송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방송위의 타율심의 강화보다는 방송사의 자체심의 강화를 통하는 길이 보다 효율적이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계제에 방송사의 개별적인 자체심의를 더욱 효율적으로 담보하는 장치로서 방송사 전체를 통괄하는 자율심의제도를 제안하고 싶다. 우선 개별 방송사의 강령이나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는 방송인들의 직업윤리강령이 필요하다. 방송 선진국의 경우 일찍부터 방송자율강령을 채택하여 시행해 오고 있다.

 미국의 전국방송사업자협회(NAB)가 ‘공익’을 강조한 ‘라디오강령’을 채택한 것은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0년대 텔레비전시대가 개막되자 NAB는 52년 ‘텔레비전강령’을 만들어 시행해오고 있다. 이런 방송자율강령의 특징은 방송인 전체의 직업윤리강령이란 점이다.

 87년 미국의 라디오·텔레비전뉴스국장협회(RINDA)가 채택한 ‘방송뉴스윤리강령’이 좋은 예다.

 방송자율강령과 타율적 심의규정은 역의 상관관계에 있다. 자율강령이 성하면 타율강령은 쇠한다. 지금과 같이 자율강령과 시행이 부재한 가운데 방송위의 심의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우리 방송사들의 자정결의가 자율강령과 효율적인 심의로 이어지면 방송위의 타율심의는 자연스럽게 천수를 다하고 사라질 것이다.

 kjk01@kb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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