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 對日부품 의존 체질 글로벌 소싱으로 고치자

 대일부품 종속관계를 벗어날 수는 없을까.

 최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한일관계가 급속히 악회되면서 국내산업의 고질적인 대일 부품의존 체질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해법이 단기적으로 전자상거래를 활용한 적극적인 부품소싱의 글로벌화, 장기적으로는 핵심기술 개발을 통한 국산화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일본과의 외교문제에서 항상 높은 부품수입의존도가 걸림돌이 돼 왔다. 특히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수십년간 적자를 보는 처지이면서도 주요 외교현안에서는 미국처럼 수입중단이라는 히든카드를 전혀 쓸 수 없는 처지였다.

 그 이유는 국내산업이 주요 부품이나 원자재 등 생산재를 일본에서 들여와야만 생산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요 업종별 부품·소재의 일본 수입비중은 적게는 27.7%(전자)에서 많게는 46.1%(자동차)에 이르고 있다. 수입 상위 100대 부품의 국가별 품목 수에서도 지난 99년 기준으로 일본이 전체의 절반인 50개 품목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은 대일 무역수지에서 항상 적자를 기록했으며 주된 원인은 부품·소재·기계류였다. 부품·소재·기계류의 대일 무역 적자폭은 전체 대일 무역수지 적자폭을 항상 초과하고 있다. 표1참조

 국내산업의 대일 부품 종속적 체질은 가깝게는 한일 외교관계에, 멀게는 국내산업의 경쟁력에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대일 부품의존도가 심각하다 보니 대형폭발사고나 고베지진처럼 일본에서 화재나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만 나면 원자재나 부품을 조달하지 못해 쩔쩔맨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박기식 e코트라 팀장은 한국의 대일 부품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국가별 산업발전단계에 따른 필연성과 더불어 지역적·정서적 연계가 강했기 때문인 측면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제는 동남아권에서도 국가별 산업발전단계가 상당히 축소됐고 전자무역의 등장으로 지역적 한계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며 부품소싱의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OTRA는 이와 관련, 최근 부품공급기지로 부상하고 있는 동남아에 부품소싱을 위한 글로벌 무역사이트를 개설해 국내업체들에 다양한 공급채널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상렬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 사장은 “동아시아 6개국과 전자무역망을 구축하면 지나치리 만큼 높은 대일 부품수입의존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대만 등 6개국이 대부분 전자부품 강국인데다 전자무역망의 개통으로 필요한 부품을 찾아내고 상담을 통해 구매까지 이어지는데 드는 비용이 거의 안들기 때문이다.

 전자업종 e마켓인 일렉트로피아의 이충화 사장은 “의사결정권자들이 기존 거래선을 고수하려는 인식만 탈피한다면 곳곳에 널려있는 e마켓을 통해 다양한 소싱채널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벤처붐을 타고 국내업계의 대일수입품 국산대체 움직임은 대일종속구조 탈피의 서광이 되고 있다. 삼성SDI·LG화학은 리튬2차전지의 양산체제를 구축해 지난해에만 약 900억원의 수입대체를 이룩했다. 리튬2차전지는 그동안 90% 이상 일본에서 수입해 왔다. 삼성코닝은 과거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던 투명전도막 코팅유리를 독자기술로 개발해 오히려 일본시장의 50%를 차지해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고려소재개발도 자동차 수동변속기 핵심부품인 ‘싱크로나이저 링’의 소재를 개발, 90% 이상을 일본에서 수입하던 것을 완전 국산으로 대체하고 최근에는 1100만달러 가량을 수출했다. 경우정공의 경우 자동차 에어컨 신냉매용 초정밀 콘덴서 튜브의 국산화로 약 80억원의 수입대체를 이룩했으며 일본업체들의 국내 공급가격을 종래의 절반으로 떨어뜨리도록 유도해냈다.

 세키노스코리아는 광픽업렌즈, TV용 렌즈 분야에서 생산품의 90%를 일본에 수출하고 프로젝션TV용 광학엔진 모듈을 자체개발, 향후 3년간 680억원어치를 일본에 수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동진쎄미켐은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던 TFT LCD용 감광제를 국산화해 오는 2002년부터 연간 150억달러의 수입대체가 예상된다. 나노테크닉스는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피치계 탄소섬유소재의 기술개발에 착수, 2005년까지 6800만달러의 수입대체를 노리고 있다.

 정부는 업계의 국산대체 노력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부품·소재분야에서 2010년까지 세계적 공급기지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아래 차세대 핵심 부품·소재의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민관합동으로 2조원 이상을 투입해 세계시장 선점이 가능한 매년 50개 이상의 차세대 핵심 부품·소재 기술개발을 지원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추진중인 ‘부품·소재기술개발사업’을 통해 가스터빈블레이드 등 이미 45개 핵심기술 개발에 착수했으며 올 하반기 중 이동통신용 기판소재 등 9개 기술의 시제품이 생산될 예정이어서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

 반도체·자동차 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수출품목의 다양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세계 일류상품 발굴사업도 부품·소재의 대일종속 탈피에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올해안에 선정할 65개 신규 차세대 일류상품 후보군 중 부품·소재분야가 21개를 차지하고 있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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