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톱박스(STB)업체들의 실적이 기술력과 마케팅에 따라 차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방송환경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방송으로 전환되는 가운데 유료 위성방송 수신기인 CAS(Conditional Access System)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업체들의 실적은 크게 개선되는 반면 무료 위성방송 수신기인 FTA(Free To Air) 등 저부가가치 위주의 제품 생산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시장을 공략하는 업체들과 그렇지 못한 업체들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마케팅 능력이 STB업체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TB업체의 대표주자인 휴맥스는 올 상반기에 작년동기대비 92.7% 늘어난 1102억6000만원의 매출과 227.2% 증가한 392억6000만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률은 업계 최고 수준인 35.6%를 기록, 업종대표주의 이름값을 해냈다.
휴맥스는 오픈마켓(소비자가 직접 STB를 구매하는 시장)에서 자체 브랜드로 인지도를 높인 게 상반기 실적개선을 이끌어낸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휴맥스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유럽의 CAS 인증절차를 자체 브랜드로 통과, 유럽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며 “CAS 매출의 증가가 회사의 수익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현재 프랑스 등 유럽의 6개 CAS업체와 라이선스를 맺고 있으며 지난해 전체 매출의 50%였던 CAS 제품 매출을 올 상반기엔 75%까지 끌어올렸다.
한단정보통신은 올 상반기 디지털 위성방송 확산에 따른 주력제품인 임베디드(내장형) CAS 매출증대 등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작년동기대비 각각 139.2%, 215.9% 늘어난 518억6000만원과 215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오픈시장에서 서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까지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에코스타사 등 2개의 유럽업체에 주문자설계생산(ODM)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디지탈텍도 급변하는 위성방송 환경에 맞춰 지난해까지 매출비중이 높았던 FTA를 줄이고 CAS와 CI(Common Interface:CAS를 카드에 장착해 사용하는 방식)의 비중을 높이면서 작년동기대비 205.9% 증가한 30억6000만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그러나 크로스마켓(방송사업자에 STB를 판매하는 시장)과 부가가치가 낮은 FTA나 CI에 주력한 업체들의 실적은 지난해보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크로스마켓에 주력하는 기륭전자의 경우 지난해 매출의 80% 가량을 의존했던 미국이 디지털위성방송사인 사이언티픽애틀랜타사의 영업부진으로 올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작년동기대비 각각 22.5%, 70.3% 줄어든 233억2000만원과 6억5000만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청람디지탈은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CI 등에 의존하며 올 상반기 STB 매출이 작년동기대비 70.3% 감소한 7억원에 그칠 것으로 추정됐다.
최용호 LG투자증권 연구원은 “STB업체들의 올 상반기 실적은 CAS 등 세계시장이 요구하는 기술력과 제품을 내다파는 마케팅력에 따라 크게 엇갈리고 있다”며 “해외의존도가 높은 국내 STB업체의 실적은 앞으로 CAS방식 제품의 안정적인 기술개발과 전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크로스마켓의 진출 여부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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