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콘텐츠 산업은 IT산업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갈수록 성장폭이 커지는 대표적인 성장 산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정의나 산업 분류 체계에 따라 구체적인 수치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시장조사 기관들은 한결같이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ETRI의 ‘세계 인터넷 산업 규모’ 보고서에 따르면 99년을 기준으로 세계 인터넷 콘텐츠 산업 규모는 999억달러 정도지만 2005년에는 2조2808억달러로 늘어 나게 된다. 6년 사이에 22배로 커지는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셈이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의 시장 규모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올 3월에 내놓은 ‘인터넷 콘텐츠 시장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인터넷 콘텐츠 시장 규모는 지난해 겨우 1조2700억원 정도였다. 120조원을 넘어서는 세계 시장과 비교하면 규모면에서 1% 수준이다. 2005년에 한국 시장 규모는 4조550억원 정도로 커진다지만 이 역시 2700조원 정도인 세계 시장의 0.16% 정도에 그친다. 2000년 이후 5년 동안 국내 시장이 3.5배라는 기록적인 성장을 해도 세계 시장과의 거리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밝히고 있는 인터넷 콘텐츠 시장 규모는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에 국한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규모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세계 시장과 한국 시장과의 차이를 분석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른 통계자료를 한가지 더 살펴보자. 문화관광부가 올초 내놓은 ‘문화산업 백서 2000’에 따르면 2000년 기준 한국 문화산업 시장 규모는 171억달러로 1조2087억달러인 세계 시장의 1.42%에 불과하다. 디지털 콘텐츠의 핵심으로 여겨지고 있는 게임만 놓고 보면 국내 시장 규모는 전세계의 0.9% 수준이다.
들이대는 잣대가 인터넷 콘텐츠든지, 문화 콘텐츠든지 우리나라의 산업 규모는 전세계의 1% 안팎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현재의 시장 규모만을 놓고 판단하면 한국의 콘텐츠 산업은 빈약하기 그지 없으며 발전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수치에는 한국이 디지털 콘텐츠 강국으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잠재력은 계량화돼 있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인구가 400만으로 인구대비 세계 1위다. 무선 이동전화 사용자도 인구대비로서는 일본 다음이다. 올 12월 디지털 위성 방송이 실시되면 1000개에 이르는 방송 채널이 생겨 또다른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 경로가 생긴다. IMT2000 서비스가 개시되면 고속 무선 인터넷 인프라도 갖추게 된다. 한마디로 디지털 콘텐츠가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인 네트워크의 강국인 것이다.
여기에다 각 분야별로 개미군단에 비유될 수 있는 수많은 콘텐츠 업체들이 포진해 있다. 2000년 말 기준 인터넷 콘텐츠사업자(CP)는 1200여개에 이르며 IP사업자 3700여개, 인포 사업자 500여개, 전화정보사업자는 2300여개에 달한다. 인터넷 콘텐츠 분야에서만 7700여업체가 사업을 벌이고 있다.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는 2000년 말 기준 951개의 게임 업체, 715개의 영화사, 200개의 애니메이션 업체, 576개의 음반 업체, 1359개의 방송관련 업체, 100개의 캐릭터 업체 등 3900여업체가 다양한 분야에서 콘텐츠를 개발, 보급하고 있다. 양 분야를 합치면 1만개가 넘는 벤처기업들이 콘텐츠 산업 분야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1만여개 이르는 개미군단이 포진해 있는 우리나라가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그동안 정부 정책이 하드웨어와 정보통신망의 구축에 치우침으로써 산업 불균형을 초래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행이 정부가 최근 디지털 콘텐츠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고 있어 앞으로 상황은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이 디지털 콘텐츠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산적한 실정이다. 우선 정부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올해들어 정통부와 문화부가 발표한 디지털 콘텐츠 육성 방안은 그동안 단편적으로 추진해온 정책과 프로젝트를 정리한 것이며 각 부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정의나 산업 분류 체계에 있어 범 정부차원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각 부처가 제각기 수천억원의 돈을 투자하고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것은 자칫하면 예산만 낭비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범 정부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려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1만여 개미군단의 잠재력을 꽃 피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작업은 과제가 되다시피하고 있다.
예컨대 분야별로 별도 관리되고 있는 법률 체계를 디지털콘텐츠라는 큰 틀 아래 재정비하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는 정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콘텐츠 육성법과 같은 새로운 입법을 통해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법령 체계를 마련하고 문화산업진흥법, 저작권법 등을 개정하는 작업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같은 법령 재정비 작업을 추진함에 있어 정부는 그동안 각 분야의 산업 발전을 가로막아온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 과거 정부가 문화 산업 육성을 위해 수백억원의 자금을 투자하는 진흥책을 만들어 놓고는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각종 규제를 일삼는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의 불법 복제와 유통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정부가 우선적으로 나서야 할 과제다.
물론 민간기업 차원의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갈수록 심각해질 콘텐츠난 해소를 위해 양질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해외 선진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도록 글로벌 표준화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올들어 인터넷 업계의 최대 이슈로 자리잡은 콘텐츠의 유료화 문제는 범 업계차원에서 공동으로 대응해 시급히 정착시켜야 한다. 개발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퍼블리싱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한 신디케이터의 육성도 시급한 과제다. 디지털 콘텐츠 산업이 여러 분야의 기술과 콘텐츠가 융합됨으로써 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업계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원소스 멀티 유즈 전략과 글로벌 비즈니스를 추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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