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P사업을 통해 본 中企정보화 현실

 ‘오는 2003년까지 총 1416억원의 지원예산 투입, 사전컨설팅도 지원 대상에 포함, 협력사간 협업적 정보기술(IT)화 지원, 철저한 평가·관리체계 구축….’

 최근 산업자원부 등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 IT화 사업에 대한 다각적인 보완책을 내놓고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현장에서 느끼는 정보화의 생소함은 여전하다.

미약한 투자 여력과 태부족인 전문인력, 저급한 정보화 마인드 등 중소기업 정보화를 짓누르고 있는 요인들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같은 대책들이 공허감만 더하고 있는 분위기다.

 저렴한 비용에 효과적으로 IT를 운용할 수 있는 대안이라며 주목받던 애플리케이션서비스임대(ASP) 사업도 최근 중소기업 도입 사례에서는 어려움이 마찬가지다. 민간의 자발적인 ASP 구축 사례와 정보통신부의 구로·남동공단 ASP 시범사업은 이 같은 현실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람이 없다=확장성표기언어(XML)·전자문서교환(EDI) 및 ASP 전문업체인 비투비인터넷(대표 이한주)은 LG전자와 부품협력사를 대상으로 지난 3월부터 협업생산관리시스템 ASP 서비스를 개통했다. 서비스 개시 4개월여가 지난 현재 창원·평택 등지의 17개 협력사가 ASP를 도입했지만 정상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곳은 10개 정도에 불과하다. 당면한 문제는 당장 수시로 발생하는 생산·납품 정보를 입력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점. 담당직원조차 공장 생산라인을 돌리는 ‘주업’ 때문에 데이터 입력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초기 시스템 가동을 위해 필수적으로 입력돼야 할 자사 생산제품 정보조차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나마 5개 회사 정도는 지난 몇 달간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의지로 직원들의 데이터 입력을 독려한 덕분에 이제는 어느 정도 일상적인 업무로 정착됐다. 이한주 사장은 “결국 정보화는 사람이 적응하고 변해가야 하는 문제”라며 “사장과 경리 외엔 사실상 사무직원이 없는 중소제조업체의 현실에서는 생산직원들이 정보화 인력으로 투입돼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현재 이들 중소제조업체의 매출액이 모두 100억원 이상으로 웬만한 규모는 된다는 점이다.

 ◇눈높이 정보화=정통부와 한국커머스넷은 인천 남동공단과 구로공단의 매출액 150억∼200억원 규모인 제조업체를 각각 15개씩 선정, 지난 2월부터 ASP를 통한 중소기업 정보화지원 시범사업을 진행해왔다. 시범사업 시한이 가까운 현재 ASP 서비스가 가동되고 있는 곳은 절반인 15개 정도. 이 가운데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제공받고 있는 회사는 겨우 2개에 불과한 반면 대다수 기업들은 그룹웨어에 만족하고 있다. 한국커머스넷 관계자는 “사업초기부터 ERP 중심으로 너무 욕심이 과했던 점도 시범사업이 목표에 못미친 이유 중 하나”라며 “사업 진행 과정에서 기업들이 쉽게 정보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그룹웨어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는 오히려 반응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관사업자들은 당초 일률적으로 책정한 초고속통신 지원비용도 기업별로 차별화했다. 특정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기업의 요구에 맞게 ADSL이나 전용선 지원비용을 업체당 150만원 한도로 동일하게 지원했다.

 ◇현장중심 교육=대부분 생산직에 종사하는 제조업체 전산담당자들은 따로 정보화 교육을 받는 것은 꿈도 꾸기 힘든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정통부 시범사업에서는 공단 내 교육장을 만들어 매주 한 번씩 일과 시간 후 교육을 실시했지만 출석률은 겨우 절반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나마 해당 교육일 아침부터 전화를 통해 참석을 독려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교육 담당자는 “현장의 생산실무에 비해 직원들의 정보화 교육은 회사 차원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고 있다”면서 “결국 직원들의 개인적인 의지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구로공단의 경우 산업단지관리공단조차 적당한 교육장이 없어 공간 확보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정통부 ASP 시범사업 교육업체는 대안의 하나로 기업체 방문교육을 몇 차례 실시해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대기업도 문제=중소기업들이 정보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가 거래관계에 있는 대기업과의 업무 프로세스 맞추기라는 점에서 대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LG전자가 협력사와 ASP 방식으로 공급망관리(SCM)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적기에 입력해야 할 생산계획정보를 실수로 누락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제때 실무진에 전달되지 않았거나 입력책임자가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협력사들은 납품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은 물론 정보화 환경에 대한 불신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는 이처럼 중소기업들의 열악한 실태에도 불구하고 정보화의 효용성이 현장에서 입증돼 가면서 확산될 수밖에 없는 대세로 보고 있다. 비투비인터넷 이한주 사장은 “중소기업 정보화의 성패는 결국 얼마나 기업현장에 천착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도입 초기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이를 극복해가는 사례가 늘면서 중소기업의 일상적인 업무로 안착돼 갈 것”으로 내다봤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