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기나긴 여정속에 고통과 환희가 쉴 새 없이 교차하는 것이나 주저앉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영락없이 닮은 꼴이다. 이같은 마라톤의 악마같은 매력 때문에 IT업계에도 마라톤 애호가들이 늘고 있다. 그냥 좋아하는 차원이 아니라 42.195㎞를 3∼4시간대에 완주하고 각종 마라톤 대회에도 참여하는 프로급 마라토너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CRM업체인 D&I컨설팅 장동인 사장과 XML 전문업체 유진데이타 김중찬 사장은 손꼽히는 마라토너 CEO들이다.
D&I컨설팅 장동인 사장은 97년 춘천마라톤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공식 마라톤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베테랑급 마라토너. 첫해에는 하프코스를 신청했지만 98년부터는 풀코스를 완주하고 있다. 장 사장의 최고 기록은 지난해 3월 출전한 서울마라톤에서 세운 4시간 37분. 올해는 4시간대 벽을 깨는 게 목표다. 올 10월에 열리는 춘천마라톤 출전도 일찌감치 예약해 두었다.
장 사장이 ‘뛰기’를 시작한 것은 미국 오라클 본사에서 컨설턴트 생활을 하던 95년부터. LA에 살면서 일주일에 5일은 다른 도시에 파견근무하던 그 당시 평일 일이 끝나면 별달리 할 일이 없어 생각한 것이 달리기다. 96년 귀국, 한국오라클에 근무하면서도 달리는 일을 쉬지 않았다. 집과 회사가 있었던 여의도(당시 오라클은 여의도에 사무실이 있었다) 한강 둔치를 뛰다가 마포대교까지, 또 당산철교·동작대교까지 거리를 점점 늘려갔다. 그러다 97년 처음으로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게 된 것이다.
장 사장은 처음 완주할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프 지점까지는 웃으면서 달렸는데 30㎞를 넘으며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고 35㎞를 지나면서는 아예 걷는 듯이 뛰었다. 어떻게 달렸는지도 모를 정도의 막판 사투를 벌이다 5시간 20분 만에 첫 완주에 성공했다(장 사장의 사무실에는 이때 찍은 골인장면의 대형사진이 걸려있다).
장 사장이 마라톤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와, 대단하시네요” 그리고 “왜 뛰세요” 두 가지라고 한다. 아직도 “왜 뛰세요”라는 질문은 “왜 사느냐”라는 질문처럼 참 대답하기 어렵다고. 아직도 운동화를 신는데까지 힘들고, 그러나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문밖을 나서면 그냥 달리기 때문이다. 10㎞에서 20㎞ 지점 사이에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상태가 온다고 하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라고 대답하기도 하고 그냥 좋아서, 재미있어서라고 대답하기도 한단다.
유진데이타 김중찬 사장도 빼놓을 수 없는 마라토너 CEO다. 마라토너 CEO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하다며 그냥 좋아서 달린다는 김 사장의 기록은 3시간 40분. 일반인이 올리는 기록으로는 수준급이다. 올해에만 서울마라톤대회와 동아마라톤대회 두 번이나 출전했다.
김 사장이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3년 전. 평소에 운동을 즐기는 김 사장에게 주위에서 마라톤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쏟아지면서 시작된 인연이다. 6∼7년 전부터 조깅은 했지만 막상 마라톤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던 김 사장은 99년 3월 서울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첫 출전하며 마라톤 세계에 입문한 셈이다.
평소에도 10㎞는 거뜬히 달렸다는 김 사장도 처음 하프코스를 뛰었을 때는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달리기에 성공하고 나서는 정말 하니까 되는구나라는 강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김 사장은 매일 아침 6시면 남산으로 향한다. 압구정동이 집이라 예전에는 강변을 뛰었지만 최근에는 남산순환도로로 옮겨 45분에서 한 시간 가량 조깅한다. 김 사장이 말하는 마라톤의 매력은 단순하면서도 고독한 운동이라는 점. 또 체력에도 좋지만 정신건강에도 효과 만점이다. 김 사장에게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또 시간을 재면서 달려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오늘도 장 사장과 김 사장은 한강 둔치를 달리고 남산순환도로를 달린다. 그리고 또 인생을 달린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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