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21세기 국가 경쟁력의 마지막 승부처’인 콘텐츠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소리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전통적인 콘텐츠 강국은 물론이고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일본도 굴뚝없는 문화공장에 비유되는 디지털 콘텐츠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개발과 육성을 위한 우리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 우수 인력과 자본들이 정보기술(IT)에서 문화기술(CT)로 대거 자리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콘텐츠와 교육용 콘텐츠는 사실 세계수준에 버금간다. 게임을 비롯한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등의 분야는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무선 인터넷 기반 모바일 콘텐츠 분야는 세계 종주국인 일본을 바짝 뒤쫓고 있다.
문제는 잠재력과 가능성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 디지털 콘텐츠산업을 어떻게 세계 무대에서 꽃을 피우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인 것이다.
본지는 이에따라 문화산업지원센터와 공동으로 ‘디지털콘텐트코리아’시리즈를 기획했다. 이 시리즈는 앞으로 매주 화요일 세계속의 한국 디지털 콘텐츠를 위한 심층적 대안과 과제를 조명하게 된다. 여기에는 정부, 학계, 업계 관계자 등 20명의 전문가가 공동 집필자로 참여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후원 바란다.◆
지난 7월 24일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디지털 콘텐츠산업 육성을 위한 범 정부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전국적인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완성했다. 이는 하드웨어를 완성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제는 소프트웨어에 중점을 두는 정책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 2월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조기에 구축함으로써 국민이 각종 콘텐츠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됐으므로 이제는 경쟁력이 있는 내용물, 즉 콘텐츠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며 영화, 드라마, 음악, 애니메이션, 게임산업에 대한 내각의 관심을 촉구한 것.
김 대통령의 이같은 당부는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을 IT산업 정책의 핵심으로 추진해 온 ‘국민의 정부’가 이제는 디지털 콘텐츠산업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 갈 것임을 선언한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이같은 주문의 이면에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IT산업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앞으로 콘텐츠산업이 동반 성장하지 못한다면 공들여 깔아놓은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오히려 유입통로가 되어 선진국 콘텐츠에 종속될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기도 하다. 이렇게 될 경우 IT산업 육성을 통해 21세기 지식강국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일류 국가로의 진입계획도 상당히 늦춰질 수 있다.
따라서 이같은 지시는 디지털 콘텐츠산업 육성을 통해 임기내 지식기반산업을 반드시 완성해 보겠다는 김 대통령의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등 저명한 학자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콘텐츠가 디지털화의 밑그림이자 완성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주변의 생활과 문화를 돌아보면 디지털 혁명이 기존의 오프라인 아날로그적 세계를 통째로 바꾸어 놓고 있다는 것은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비트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문명이 그동안 인류 문명을 선도해온 인쇄매체 위주의 2차원 문명을 대체하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최근에는 그동안 IT산업을 주도해온 유선 기반의 인터넷 대신에 무선 기반의 모바일 인프라가 확산됨에 따라 기존의 네티즌과는 다른 모티즌이라는 새로운 사이버 인류가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같은 온라인 디지털화가 기술 개념이나 통신 인프라 차원을 넘어 전세계 인류의 생활과 문화 전반에까지 확대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더욱이 그 시장이나 비중에 있어 정보기기를 비롯한 하드웨어나 정보통신서비스에 뒤지지 않는다. 아직까지 그 개념과 영역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들은 콘텐츠산업을 IT산업의 핵심으로 분류하고 있다.
세계엔지니어링컨소시엄(이하 IEC:International Engineering Consortium)은 지난 97년 발표한 ‘IT산업 부문별 시장규모 현황과 전망’에서 IT산업을 △통신 단말기, 컴퓨터, 소비자 전자기기 등을 포함한 정보기기 △기간통신과 부가통신을 포함한 정보통신서비스 △정보콘텐츠 등으로 구분했다. IEC는 인쇄, 오프라인 온라인 멀티미디어 콘텐츠, 게임, 데이터베이스, 영상 콘텐츠(영화·비디오·방송·애니메이션 포함) 등을 망라한 정보콘텐츠 시장이 94년 8000억달러에서 2005년에는 3조236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05년의 전망치를 기준으로 하면 7조4290억달러 규모의 전체 IT산업 중에서 콘텐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3.5%로 31.3%인 정보통신서비스, 25.1%인 정보기기 시장을 앞서게 된다. 물론 들이대는 잣대나 산업별 분류체계에 따라 이같은 수치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디지털 콘텐츠산업이 IT산업의 핵심으로 향후 하드웨어나 통신서비스 시장에 비해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는 점만큼은 동의할 것이다.
이같은 전망에 따라 미국은 뉴욕 매디슨 애비뉴의 실리콘 앨리를 중심으로 디지털 콘텐츠산업의 패권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가시화하고 있으며 프랑스, 일본 등 전통적인 콘텐츠 강국들도 국가차원의 디지털 콘텐츠 전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영국은 지난해 범 정부 차원의 디지털 콘텐츠 육성 계획을 발표, 큰 관심을 모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보통신부가 올해 ‘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 5개년 계획(DC 액션 플랜 2005)’을, 문화관광부가 ‘콘텐츠 코리아 비전 21’계획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중복투자로 논란을 빚어온 정부부처의 업무가 조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표로 삼을 정부차원의 비전과 육성책은 표류된 상황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콘텐츠의 영역이 방대한데다 부처간 이기주의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콘텐츠산업이 기존의 문화오락산업은 물론 정보통신 인프라 및 관련 기술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정부의 어느 특정 부처가 전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세설계없이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일부 부처에서 만들어진 육성책만으론 백년대계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지표 마련과 함께 부처간 이견을 조율할 전담기구 설립이 시급하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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