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방을 정리하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디지몬’ 공책에 ‘디지몬’ 필통,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공룡 모형과 그림책, ‘피카츄’ 크레파스, ‘텔레토비’ 열쇠고리 등 온통 외국산 캐릭터가 장식돼 있었다. 게다가 아이가 벗어놓은 양말과 티셔츠에도 ‘피카츄’ 캐릭터가 새겨져 있고 벽에 걸린 달력마저도 ‘디즈니’ 만화 주인공들이 열두 장을 모자라게 바꿔가며 장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또 이 뿐만이 아니다. 아이는 밥을 먹을 때마다 국그릇에 있는 ‘헬로 키티’와 눈을 맞추고 ‘미키마우스’ 포크로 반찬을 집어 나른다. 요즘처럼 비오는 날에는 ‘스누피’가 드리워 주는 우산 아래서 비를 피하고 심심할 때는 비디오 속 ‘곰돌이 푸우’를 친구 삼는다.
그러고 보니 지난 3월 아이가 입학할 때 사준 둘리 가방에 잃어버리지 말라고 이름을 적을 때 아들이 “엄마, 이름 적을 필요 없어. 우리반 애들은 다 디지몬 가방이야. 둘리는 나 하나밖에 없어.”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아이가 갖고 싶어하던 디지몬 가방을 사주지 않아 심통이 나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한 두번 하교길에 마중을 나가 보고서야 그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처럼 어느 것 하나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캐릭터 주인공은 없는데도, 이들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이 실상이다. 그렇다고 이런 외국 캐릭터가 그려진 물품만을 골라서 사준 적은 전혀 없다. 문구점·팬시점·할인마트 등에 가보면 이들 외국산 캐릭터가 온통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소비자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국내 캐릭터 시장의 75%는 미국의 월트디즈니, 20%는 일본 캐릭터들이 잠식한 상태다. 국내 업체들도 캐릭터 산업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이의 개발과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시장에서 국산 캐릭터의 점유율은 5%도 채 되지 않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정부와 기업들이 캐릭터 박람회와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전시, 심포지엄 등을 통해 캐릭터 산업 발전방향 모색과 대중적인 관심 조성에 힘쓰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본다.
국가의 경제적 영향력을 떠나 우리 아이들이 이런 캐릭터들에 아무 대책 없이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캐릭터 산업이 고부가가치의 황금산업이며 미래산업인 것은 확실하다. 이 산업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인 문화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금의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한편,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다.
오해옥 서울 관악구 봉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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