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재조명](10)빅3도 세계시장선 중소기업

 “한국통신을 공룡, 공룡 하지만 외국 거대 사업자에 비하면 어린애 덩치에 불과합니다. 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AT&T·BT·NTT 등 헤비급들이 몰려 들어올텐데 플라이급 수준의 국내 통신사업자들이 경쟁할 엄두가 나겠습니까. 게다가 세계 진출을 위해서는 이들과 어깨를 겨뤄야 하는 판에 한국에도 미들급 정도의 대표주자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송영한 한국통신 마케팅본부장)

 “재벌이 유망 벤처기업들을 무차별로 인수합병한다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SK가 한국에서는 대기업일지 몰라도 세계무대에 서면 중소기업일 뿐입니다. 글로벌경쟁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최소한의 ‘규모’가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 벤처기업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제휴나 협력을 통해 전제적인 세(勢)를 불리자는 것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IT신화를 창조한 한국이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세계시장서 한국의 초우량기업으로 꼽히는 IT 빅3, 삼성전자·한국통신·SK텔레콤이라 해봐야 경쟁관계인 외국 거대기업에 비하면 중소기업이다.

 실제로 비즈니스위크(6월18일자)가 선정한 세계 200대 IT기업 랭킹을 보면 이같은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비즈니스위크가 S&P자료를 기초로 매출액·매출증가율·자기자본비율·주주자본이익률 등 4개 항목을 기준으로 종합평가한 바에 따르면 100대 기업 가운데 한국기업은 하나도 없다.

 미국이 67개로 압도적 수치를 보였고 일본이 6개였지만 대만은 무려 7개를 진입시켰다. 심지어 한국과 IT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싱가포르·홍콩·인도 등도 명함을 내밀었고 핀란드·멕시코·스페인 등도 100위내 기업을 배출했다.

 순위를 200대까지 확대할 경우 SK텔레콤이 160위, 한국통신(KT)이 192위에 턱걸이 했을 뿐이다. 물론 비즈니스위크의 평가기준이 단순 외형이 아닌 종합평가였기에 100대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삼성전자가 빠진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튼 한국 IT 대표선수들의 성적표 치고는 참담한 수준이다.

 특히 한국이 상대적으로 가장 앞선 경쟁력을 자랑하는 통신사업자들의 랭킹만 따져도 버라이존(미국)이 2위, 차이나모바일(홍콩)이 5위, NTT도코모(일본)가 15위, 보다폰(영국)이 92위에 올라있다. 텔레포니카모빌(스페인), 아메리카모빌(멕시코), 스위스콤(스위스), 모바일텔레시스템(러시아), 텔레콤이탈리아(이탈리아) 등 유럽기업은 각각 7, 9, 29, 72, 123위에 올랐다. 이에 반해 세계 최대 CDMA사업자인 SK텔레콤은 160위, 한국 최대 종합통신사업자인 한국통신은 190위에 불과하다.

 한국의 빅3가 경쟁사로 삼고 있는 해외 주요기업과의 비교지표를 보면 우리 현주소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종합통신부문의 한국통신은 지난 99년말 기준 매출액이 9조5956억원이었다. 이에 비해 AT&T는 무려 7배가 넘는 70조6391억원이었고 영국의 BT는 30조4275억원이었다.

 순이익으로 가면 격차가 더 벌어진다. KT가 3833억원이지만 AT&T는 6조1704억원, BT는 3조3411억원으로 집계됐다. 자연히 시가총액(2000년 10월 기준) 역시 큰 편차를 보인다. KT가 21조원 남짓이지만 AT&T는 114조원, BT는 78조원이 넘는다.

 무선통신의 SK텔레콤은 2000년 매출이 5조7609억원인 데 반해 NTT도코모는 거의 8배에 가까운 39조8000억원이다. 당기순이익은 SK텔레콤이 9507억원이지만 NTT도코모는 2조7000억원이다. 이 역시 종합통신과 마찬가지로 경쟁업체와는 거의 7∼8배 격차가 있다. SK텔레콤과 NTT도코모의 총자산 비교는 9조536억원대 38

조7000억원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IT최고기업 삼성전자와 일본 소니를 견주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삼성전자의 2000년 외형은 345억7300만달러, 소니는 585억1800만달러였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로 사상최고의 호황을 맞았던 삼성의 2000년 기록이지만 반도체가 없는 소니보다 작은 회사인 것이다. 위안이 되는 것은 반도체 덕에 당기순이익이 소니보다 월등히 많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순익은 71억9600만달러, 소니는 18억300만달러였다.

 한국이 지난 수년간 세계 최고수준의 인프라를 확보하고 사용률 역시 최정상급인 인터넷분야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다음의 지난해 외형은 285억원, 야후는 11억1020만달러(한화 약 1조4000억원)였다. 야후의 한국법인 야후코리아도 1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다음은 국내 전체 인터넷사용자보다 많은 2700만명의 가입자를 갖고 있지만 야후는 전세계에 1억9200만명(야후코리아 1300만명)을 거느리고 있다. 하루 페이지뷰의 경우 다음이 2억3000만페이지이고 야후는 26억(야후코리아 9800만)페이지로 조사됐다. 한국 최대와 세계 최고의 격차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이런 결과는 한국IT기업들이 단일경제권으로 묶인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끼리 재벌이니 공룡이니 떠들어 봐야 그것은 이불속에서 활개치는 꼴이지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시장을 호령하는 주요기업들은 거대한 항공모함을 필두로 구축함·순양함 등 선단을 이뤄 해양을 지배하는데, 일개 구축함 수준인 한국IT기업들은 해전은 커녕 항해에도 쩔절 매는 꼴이다.

 이 때문에 세계무대로 뻗어 나가려는 한국의 IT기업들은 덩치를 더욱 키우고 ‘함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이 이제는 내수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이라는 잣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몸집을 불리는 과정과 결과다. 재벌급 기업들이 무턱대고 중소기업을 인수한다고 해서 규모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칫 체력은 허약한데 몸집만 커지게 되고 이것은 상대방의 ‘잽’ 한방에도 무너질 수 있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단위경제규모를 키우는 것이 반드시 인수합병일 필요는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유기적 연계, 예컨대 개발프로젝트의 공유협력, 사업구조의 상호보완, 수주과정의 협력체제 구축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재벌이 경제정의에 반하는 벤처 중소기업 사냥에 나서는 것은 차단해야 하지만 세계시장서 싸울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협력·보완체제는 적극 장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문어발 확장 욕심 내지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고 중소기업도 고유영역을 갖춘 채 기꺼이 대기업과 협력하는 일본 혹은 대만형 구조가 요구된다.

 한국IT산업의 성장신화를 이어가려면 한국형 총력체제가 시급한 때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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