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재조명](9)인력수급에 눈 돌려라

“연봉은 얼마라도 좋습니다. 제발 사람 좀 구해주세요. 제품 콘셉트까지 완벽하게 설정, 해외 바이어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정작 이를 상품화할 수 있는 프로덕트 매니저가 없습니다.”

 “닌텐도를 보세요. 게임 개발자의 90% 이상이 고졸자입니다. 우리는 해외 유명대학 박사들이 즐비하지만 세계를 석권하는 게임 소프트웨어 하나 못 만들고 있습니다. 가방끈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사람은 넘쳐 나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은 없다. 최근 온라인게임으로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모 게임업체가 10억원이 넘는 연봉과 스톡옵션을 제공하고 외국의 게임 개발자를 영입, 화제가 됐지만 기업가들은 꼭 필요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심지어 벤처기업은 물론 대기업조차 우수 전문인력을 유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최고 경영자는 아예 인력 스카우트가 가장 중요한 업무능력이 되고 있다. 상황이 이쯤되자 필요한 사람이라면 연봉이나 조건은 문제되지 않는다. 무리한 요구를 해도 모두 들어주며 영입을 서두른다.

 한국 IT산업의 성장 신화는 중저가 상품의 대량생산에 의해 이뤄졌다. 굳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있어봐야 큰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IT산업의 질적 도약이 요구되고 있고 그 핵심은 ‘사람’이다. 천재 한두명이 세계 산업의 흐름을 좌우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 경제 현실상 더이상의 임금 따먹기식 대량 생산기법은 통하지 않는다. 제조업에서부터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 창출에 이르기까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어찌보면 한국 IT산업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고급 전문인력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기업과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하지만 한국 IT산업의 인력 구조는 양적, 질적 모든 부문에서 빨간등이 켜졌다. IT산업이 급성장, 이에 따른 수요가 폭발했지만 아직 노동시장은 전통산업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공급이 모자라는 것이다. 게다가 전통산업에서 퇴출한 인력의 IT화, 이를 통해 재취업으로 이어지는 노동시장 구조조정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세계 최강의 기계공업 기술을 자랑하는 독일의 경우 최근 10여년간 이공계 대학 진학자가 해마다 줄어 극심한 IT인력난을 초래하고 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해외 인력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 마저도 신통치 않아 기존의 기술강국 이미지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양적 인력확보에는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더라도 핵심 고급인력, 즉 질적 자원의 부족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한국 IT산업이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다.

 일단 IT인력의 전반적 수급부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조사에 따르면 99년 현재 한국 IT산업 취업자수는 100만명 수준이었으며 2000년부터 연평균 6.5%가 증가, 2004년에는 148만5000여명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같은 취업자 확대는 IT부문의 고용창출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정보통신부는 2004년에만 IT부문에서 5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에는 IT부문에서 12만5000여명의 신규 채용이 기대된다.

 문제는 수요창출에 대응한 인력수급이 원활치 못하다는 데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의 경우 필요인력의 30% 정도만이 대학 등 기존 교육기관을 통해 보충할 수 있고 석사 이상의 고급인력 수급난은 더욱 가중된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KISDI는 소프트웨어부문에서 2004년까지 학사 12만2000여명, 석사 19000여명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5년간 부족인원의 누적치이긴 하지만 필요 인력의 마이너스 75%(학사)와 88%라는 충격적 통계치인 셈이다.

 통신부문은 상대적으로 수급사정이 낫지만 이 역시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2004년까지 학사는 376명이 모자라고 석사 이상은 1094명이 부족할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인 것으로 IT혁명이 급진전해 세계 각국이 인력 수급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해외 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후발개도국은 가뜩이나 부족한 IT전문 인력의 선진국 유출에 비상이 걸렸고 전세계적 IT인력 구조가 특정 선진국 몇 개국에 ‘쏠림현상’으로 나타나게 됐다.

 실제로 IDC는 2002년 IT업계에서 필요한 인력 중 유럽에서 100만명, 미국에서 85만명 이상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조인트벤처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필요인력의 3분의 1을 확보하지 못해 연 30억달러 상당의 손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무부는 IT부문 고용인력은 96년 464만명에서 오는 2006년에는 600만명으로 증가하겠지만 60만명 정도가 부족하고 핵심 직종인 컴퓨터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등은 34만명 이상 부족, 100인 이상 업체당 3명 정도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지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IDC는 97년 정보통신인력 900만명, 부족인력은 32만명 수준이었던 서유럽국가들이 2002년에는 전체 인력수요의 12%인 160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아시아 4룡 가운데 IT산업에 가장 적극적인 싱가포르조차 필요인력의 68%만이 자국에서 충원되고 나머지는 말레이시아, 인도, 중국 등 해외에서 확보하고 있다.

 이런 탓에 세계 각국은 물론 한국 정부도 IT인력 양성과 유치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21세기 국가 경쟁력을 가름할 최대 변수가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를 국정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는 정통부가 주축이 돼 매우 다양한 인력 육성책을 내놓고 있다.

 정통부는 고급 전문인력과 일반인력을 구분, 특성에 맞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석박사 이상의 전문 인력을 겨냥, 대학 IT관련 학과의 장비 및 기술 지원, 정원 확대 등 인프라에서부터 스탠퍼드대 연수 등 각종 자금지원에 나서고 있다.

 일반 인력을 위해서는 주부, 노인 등 정보화 소외계층에 대한 무료 컴퓨터 교육을 비롯, IMF과정에서 발생한 실업자의 IT교육 및 재취업 지원 등이 눈에 띈다. 특히 외국 정부에서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는 군장병 컴퓨터 교육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정책이다. 정부의 이같은 노력으로 IT부문에 대한 인력수급은 점차 정상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에도 IT산업의 변혁을 이끌 핵심 주도세력, 즉 최고급 전문인력 양성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전문가들은 기업 최고 경영자들이 IT교육 투자에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장의 필요인력을 돈 주고 구해오는데서 한발 나아가 기존 직원의 교육강화를 통해 창의적인 최고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인력 수급구조를 확보하라는 것이다.

 기업이 교육에 대한 투자를 10% 증가했을 때 생산성이 8.6% 향상되고 이는 이윤 증대의 세 배에 이른다는 것은 경영학 원론이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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