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바이오기술과 윤리

◆윤원창부국장대우 과학기술부장

 우리는 현재 디지털 혁명기에 살고 있다.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가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되어 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인간처럼 감각을 느끼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로봇이 개발돼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미래학자들은 이러한 디지털 혁명보다 훨씬 더 큰 충격으로 와 닿고 인류의 미래까지 바꿔 놓을 게 바이오 혁명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또 바이오 혁명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미래학자들은 디지털 혁명의 경우 인류의 문명만을 향상시키지만 바이오 혁명은 문화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는 지금까지 인간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인간이면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하고 이러한 욕망을 이루기 위한 인류의 도전은 끝이 없다.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병사를 풀어 불로초를 찾았던 무병장수(無病長壽)의 염원에서 시작된 도전은 최근 인간 게놈지도 완성으로까지 이어졌다.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제는 신의 영역이라고 믿어온 생명의 창조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생명공학기술(BT)의 발전은 다른 과학기술 분야와 달리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영국에 이어 복제소를 탄생시키고 불임치료 기술에서도 세계적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지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인간유전체기능사업’에 10년 동안 해마다 약 100억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연구개발 지원뿐 아니라 그 안전성과 윤리성 확보에도 눈을 돌려 최근 과학기술부의 생명윤리위원회가 ‘생명윤리기본법’시안을 내놓기도 했다. 시안의 기본 뼈대는 인간배아 복제는 금지하되 배아 연구는 엄격한 관리 아래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이 얼마 전 공청회를 통해 발표된 후 과학기술계와 종교계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과학기술자들은 “인간의 난치·불치병을 배아복제 연구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인간생명과 존엄성을 더 높여 보자는 연구가 생명공학 연구”라며 “그것도 인간복제를 위한 개체복제가 아닌 체세포 복제연구마저 금지한 것은 너무 심한 규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이 시안대로 시행되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관련 연구가 위축돼 21세기 생명공학 시대에 국가경쟁력이 뒤떨어질 것이라고 경고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반면 종교인이나 윤리학자들은 국가경쟁력보다 생명의 존엄성이 훨씬 중요하다며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배아 연구나 유전자 조작처럼 민감한 연구사안은 사회 구성원의 광범위한 합의와 지지가 절대적이다. 때문에 여기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주장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기본법은 바로 이를 절충하는 하나의 합의점을 제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논쟁은 공청회 이후 수그러지기는커녕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와 관련해 이처럼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경우도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번 기본법 시안을 둘러싼 찬반논쟁 어느 쪽도 생명질서의 파괴를 불러오게 하거나 아니면 생명공학기술의 발전을 막자는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 생명의 존엄성 위에서 과학기술을 어느 선에서 수용하는가의 문제인 만큼 앞으로 여론수렴 과정에서 배아연구 등에 보다 전향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그것은 생명공학 기술이 우주항공기술과 함께 21세기에 가장 주목받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난치병 치료는 물론 생명의 연장을 가져올 꿈의 의학으로 불린다. 특히 배아복제 등을 통해 얻어지는 배아간세포의 경우 3∼5년 내에 상용화돼 연간 3000억달러의 부가가치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선진국들이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쟁적으로 인간배아 연구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그 연구에서 얻어지는 혜택을 선점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 타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연구가 가능하고 우리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분야가 생명공학 기술임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생명윤리기본법안이 올해 안으로 국회에 상정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추측도 있다. 법안 마련이 늦어질수록 우리나라 생명공학 기술은 뒤떨어질 수 있다. 그만큼 시안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일수록 ‘판을 뒤집겠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보다 기본법이 만들어질 때 합의의 과정을 소중한 것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합리적인 의견개진을 통해 사회 구성원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공학 관계자들도 과학이 과학내적으로나 외부의 작용에 의해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것을 극복하려는 ‘예지’를 보이면서 발전해온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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