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677)벤처기업

마지막 승부<5>

 

 북한에서 전자산업은 이미 들어가 있다. 북한이 개방되면서 각 전자업체가 다투어서 진입을 하였는데 더러는 실패하고 더러는 성공을 하였다. 성공을 한 기업체는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단순 생산에 주력한 기업이고 그곳에서 시장을 확보하려고 시도한 기업체는 실패했다. 첨단 전자산업을 수용하기에는 북한의 경제 수준이 따라와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점차 그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그렇게 되자 수용부족 현상을 나타냈다.

 북한에서의 벤처 창업 붐이 일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대부분 한국의 젊은이들이나 중소기업의 진출로 나타난 가시적인 현상이었다.

 나는 한국의 TV 생산공장 사장단이나 기술 고문들, 다른 한편 전자분야의 사장단과 기술진을 대동하고 평양에 갔다. 전세기편으로 한꺼번에 백여명이 평양에 도착하였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은석이 공항에 나와서 맞이했다. 내가 한국 국회의장이라는 점 때문에 같은 격으로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마중을 나온 것이다. 양은석은 내각 주석 박성호와 거의 같은 실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김정일이 죽은 후에 북한은 보통 5인방이라고 하는 실세가 정권을 나누어 가진 채 이끌고 있었다. 아직도 권력 중의 핵심인 인민무력부는 차태현 원수가 장악하고 있고 내각 주석 박성호,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은석, 중앙당 총서기 김립, 경제외교위원회 위원장 김성희였다.

 5인방이 정권을 고루 나누지 않으면 북한의 권력을 지탱할 수 없었다. 그것이 언제 와해될 지 알 수 없으나, 통일을 지향하는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어느 특정인이 정권을 장악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북한 주민은 이제 남한의 실태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고, 자본주의 맛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고려호텔에 여정을 풀고 그날 양은석 의장이 내는 저녁 만찬에 참석했다. 그 만찬에는 북한의 5인방이 모두 참석했다. 그들과는 전에 여러 번 만난 일이 있기 때문에 허물이 없이 대했다. 특히 김정일의 동생 김성희는 내가 기업인들을 끌고 온 것을 알고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이제 칠순이 넘은 노인이었지만, 아직도 피부가 깨끗하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최 의장님께서 한국의 벤처기업을 모두 이끌고 오셨다고 들었습네다. 우리도 컴퓨터 산업은 높게 발전했습네다. 기러나, 아직은 한국에 미치디 못하디요.”

 만찬 석상에서 김성희가 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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