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분단 반세기 만에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선언은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비롯해 장관급 회담, 금강산 관광처럼 남북 교류에서 역사적인 사건들이 잇따랐다.
남북 화해 분위기는 경제협력 분야에도 ‘훈풍’을 몰아왔다. 남북간 교역 규모는 2001년 3월 현재 242개 품목, 3975만달러로 작년 동월대비 75%나 증가했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 남북교류 및 협력사업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전환기를 맞았다. 여러 분야에서 ‘분단사상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교류의 성과들이 도출되었다. 경협 모델도 기존의 하드웨어 위주의 단순 임가공에서 소프트웨어 등 기술협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특히 올초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놓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IT분야에서 만큼은 진전이 계속돼왔다.
올들어서만도 분단 이후 처음으로 세 차례에 걸쳐 남북IT교류협력을 위한 민간기업단이 방북해 북측과 네트워크 구축, 인력 양성, 소프트웨어 공동개발 사업을 논의하고 일부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지난 5월에는 남북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한기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컴퓨터 소프트웨어·멀티미디어를 공동 개발하는 남북 IT협력의 요람 ‘하나프로그람쎈터’가 중국 단둥에서 문을 열었다. 또 다음달 중에는 평양 근교에 남북 합작 IT비즈니스타운이 착공돼 내년부터는 남측 IT기업들이 북측과 공동으로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됐다 .
이에 앞서 지난 2월 남북 IT교류의 기초가 되는 한글 정보처리 표준 분야에서도 공동안이 도출되고 4월에는 평양정보쎈터가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한에 IT전문 도서 기증을 정식 요청해 오는 등 남북 IT교류협력 움직임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또 오는 9월에는 남북이 공동으로 평양에 정보과학기술대학을 세워 IT 인력 양성에 나서기로 했으며, 포항공과대학도 남한의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의 평양정보센터와 IT분야에 대해 공동연구를 추진키로 했다.
IT교류협력이 본격화된 배경에는 남북 모두 IT교류가 가장 현실적이고 생존적인 접근방법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의 기초과학 및 기술인력을 남한의 상품화 기술과 합칠 경우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 남북한 당사자들의 이해가 맞물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IT를 ‘강성대국 건설의 핵심’으로 삼을 만큼 국가 차원에서 관련기술 도입과 전문가 양성 등에 힘을 쏟고 있다. IT 육성을 경제난 극복을 위한 돌파구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와관련 북한은 올들어 남북경제협력교류 수준을 기존 단순임가공에서 탈피해 기술이전이 수반되는 IT교류협력으로 확대해가고 있다.
남한도 언어장벽이 없는 북한의 고급 인력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기반기술이 갖춰져 있지 않은 북한 시장을 초기투자로 선점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빼놓을 수 없다.
최고통치자인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공히 IT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도 남북 IT교류를 진전시킨 배경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편 IT교류협력사업이 남북 모두의 목적을 달성하며 상생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류의 수준을 남북간 정보 격차 해소 단계에 까지 끌어 올려야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북한의 열악한 통신 인프라와 IT 장비부족 그리고 폐쇄된 정보체계 등도 IT교류의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남한에서는 북한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도 적극 나서야 한다. IT교류가 단순히 서로의 경제적인 이익 실현을 목적으로만 하지 않고, 서로의 정보 격차를 줄이고 민족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통일IT포럼 대표인 김광현 LGEDS 상무는 “남북한간의 IT교류협력은 남한의 앞선 장비·기술과 북한의 숙련된 인력을 결합해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자는 경제적 이윤 외에도 먼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 단둥에서 만난 최주식 평양정보쎈터 총사장 역시 “21세기에 북과 남이 IT분야에서 협력해 가면서 정보시대를 선도해 나가야만 우리 민족의 장래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보다 확대된 남북 IT교류 협력과 민족을 장래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도 있다. 우선 미국의 중심으로 이끌어지고 있는 바세나르 협약, 즉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전략물자 반출제도는 대표적인 걸림돌이다. 이에 대해서는 남한 정부차원에서 일정부분 역할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남한기업들간의 과당경쟁이나 중복투자, 한건주의식 투자 계획 남발도 지양해야 할 대상이다.
이같은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이 될 때 남북간 IT교류협력사업은 남북을 둘러싼 외부의 복잡한 상황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남북관계를 지속 개선시켜 나가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이 지난 1년간의 IT교류협력 부문에서 얻은 성과를 발판삼아 앞으로 이를 지속 확대하고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관심과 노력을 배가시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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