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669)벤처기업

정치 입문<31>

 

 나는 아이를 유학보내기 위해 국희의원의 신분으로 여권을 위조하거나 가짜 증명서를 만든 일은 없었다. 조기 유학의 경우 외국 상사 주재원이나 공관에 근무하는 자녀는 허용되고 있었다. 국회로 들어오면서 내가 일했던 미국 주재 상사의 대표이사 자리를 아내 명의로 바꾸었다. 아내는 명의상 대표였지만, 일은 하지 않았다. 그 아래 후배 경영인이 실무적인 대표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미국 주재 회사의 사장이라서 그 자녀인 두 아이가 그곳으로 가서 공부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 자세한 내용을 알지도 못한 채 이 의원은 국법을 어긴 조기 유학이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그것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중학생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낸 것은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왜 일찍 보냈느냐고 물으면 한국의 교육 환경을 탓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돈이 많아서 그렇게 했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그렇게 하려고 해서 승낙을 했다고 둘러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소위원회에서 나의 신상 문제를 놓고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한 동안 다투다가 사회를 보고 있는 위원장이 싸움을 말려서 멈추었다. 그리고 다른 안건으로 넘어갔지만, 여야간의 대립감은 아주 노골적이면서 팽팽했다. 목소리를 키우고 삿대질을 하는 사람은 주로 고참 의원들이었다. 나 같은 초년병들은 분위기에 익숙해지려고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그러나 초년병이라고 해도 목소리를 키워야 하는 돌격부대가 있었다. 그것은 소위원회가 아닌 정기 국회 때였다. 이미 논쟁이 야기된 연설이나 법안을 상대방 당이 들고 나오면 그것을 육탄으로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질 경우도 있었다.

 정가에 발을 딛고 나서 또 하나의 변화는 찾아오는 민원인이 많다는 점이었다. 나는 지역구 의원이 아니니까 지역 주민이 오는 경우는 없었다. 내가 목포 출신이기 때문에 목포에서 사람이 올라와서 부탁을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으나 해당 지역이 없어 유권자들의 내방은 없었다. 그 대신 기업 활동을 할 때 알게 된 모든 사람들이 찾아왔다. 기업인들의 내방에는 단순히 인사차 방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청탁 문제를 들고 왔다. 이왕 와서 만나는 참에 의정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더러는 청탁이 없이 그냥 푸념을 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 나에 대한 비난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시원하다는 듯 문을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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