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지금이 1974년인가

◆김경묵 디지털경제부장

 

좀 오래된 얘기다.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은 두사람에게 돌아갔다. 한 명은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을 주창한 경제학자 뮈르달(Myrdal)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신자유주의 기수인 하이에크(Hayek)교수였다. 해당분야에 큰 공헌을 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노벨상 성격상 공동수상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서로 상반된 경제이론을 주창한 이들이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이는 당시 세계 경제발전 모델로 국가주도와 시장경제중 어느쪽이 우월한 지에 대한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단면이기도 하다.

오래 전 일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최근 기업규제완화 문제를 놓고 정부와 재계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양상이 그 때와 너무 흡사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냉전논리가 지배하고 있던 70년대의 혼란기를 지나 80년대를 거치면서 나타난 공산권의 붕괴는 시장경제체제를 신봉하는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해줬다. 그 후 시장경제는 국가의 규모나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세계경제의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잡아왔다. 이에 걸맞게 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 역시 경제이념으로 시장경제를 표방하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또 다시 국가주도와 시장경제 사이의 주도권 논쟁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나타난 현상만 보면 정부의 ‘개혁 기조 지속’ 정책과 업계의 ‘규제완화’ 요구가 맞부딪치면서 나온 결과다. 하지만 속내는 IMF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재벌들이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에 납작 엎드려 3년간 끌려왔는데 결과는 영 아니라는데 기인한다.

이같은 사실은 세계의 각 기관들이 내놓은 성적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사주간지 포브스가 최근 발표한 나라별 기업여건 조사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25개국 가운데 최대 경쟁국이라 할 수 있는 대만, 말레이시아, 중국보다도 못한 18위에 그쳤다. 포브스는 우리나라의 창업비용이 1인당 GDP의 15.6%, 창업소요 기간은 46일, 자본 접근의 용이도 17위 등으로 영국의 창업비용 1인당 GDP의 0.6%, 호주의 창업기간 3일에 비해 턱없이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스위스 국제경영 개발원(IMD)에서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는 28위에 랭크됐고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케이토연구소는 우리나라의 경제자유도를 43위로 평가했다.

이 나마도 정부가 앞장서 강도높은 재벌 규제정책을 펼쳤기에 가능했다는 논리가 성립되면 모를까 여하튼 이 성적표에 대해서는 당국은 별로 할말이 없어 보인다. 실제 경제현장에서 만난 상당수의 CEO들이 한국에서 사업하기 힘드니 본사를 외국으로 옮기든지 해야겠다는 말을 해 놀란적이 있다. 전해오는 느낌으로 볼 때 장사꾼들이 그냥하는 엄살이 아니라는 것에 사실 더 놀랐다. 경제현장과 각종 보고서를 통해 터져 나오는 일련의 목소리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정부가 당초 표방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시책 만큼은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인지 요즘 재계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현재의 경기침체가 모두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이라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그 어느 때보다 발언의 위험수위도 높고 강도 높게 밀어부치는 힘도 예전같지 않다.

그렇다고 현 경제난국의 책임이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몰아부치는 것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 물론 개혁구호를 앞세워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모든 것을 풀어온 정부의 잘못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재계 역시 그렇게 떳떳한 입장은 아니다. 아직도 족벌경영과 세습경영이 판치고 있고 시장지배구조를 앞세운 재벌들의 시장왜곡현상 역시 고쳐진 것이 별로 없다. IMF시절 물었던 재벌들의 죄상 가운데 개선된 게 크게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의 논리가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재벌들이 이뻐서가 아니라 실물경제를 망친 정책들이 싫어서라는 게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말히기 편한 양비론을 펼치자는 게 아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그것이 정부건 기업이건 대상이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국가에서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뒷걸음질 친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얘기다.

현재 정부와 재계가 벌이는 줄다리기는 공동 수상을 위해 단상에 올라가 있는 국면이 아니다. 경기침체의 책임을 지고 단죄를 받기 위해 같이 재판정에 서있는 형국이다. 이를 착각하고 여전히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1974년에 살고 있는 국민들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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