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5)빛과 소리의 고향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0-1번지, 세종문화회관 옆 공원에는 높이 9m, 폭 13m의 화강암과 오석(烏石)으로 된 탑 하나가 서있다. 전기통신 발상지 기념탑이다.

 그 탑에는 언론인 이규태씨가 쓴 건립기가 새겨져 있다.

 “이곳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기통신이 발신된 한성전보총국이 자리했던 터다. 사역원(司譯院) 건물을 인수하여 1985년 9월 28일 문을 열고 제물포에 첫 전신을 띄웠으며 11월 19일에는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전신망을 넓혔다. 이로써 전신으로 필묵을 대신하고 전광으로 우편을 대체했으니 일순간에 천리를 통과하고 열 개의 점으로 만언(萬言)을 표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후에 이 터에는 조선전보총국, 한성전보총국, 통신원이 차례로 들어섰고 광복 후에는 광화문 전화국이 차지함으로써 우리나라 전기통신의 씨앗이 이곳에 뿌려져 이곳을 요람삼아 이곳에서 거목으로 자랐으니 이곳에다 미래의 시공을 향해 비약하는 뜻을 담은 기념탑을 세워 기리는 바이다.”

 1992년 9월 26일 제막된 전기통신 발상지 기념탑은 상징성, 발전성, 공간적 조형성, 예술성, 주변환경과 조화를 고려하여 조형된 작품으로 밝고 친근한 분위기를 주고있어 복잡한 도심환경에서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데, 발상지를 상징하는 터의 개념으로 하단부를 대지형태로 조형하고 상단부는 통신역사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봉수와 안테나 형태로 표현, 역사로부터 새로운 시대로 계승되는 정신적 심벌로 표현하고 있다. 탑의 하단 중앙부에는 조명시설을 도입하여 통신의 원초적 원리를 상징하여 전기통신 발상지의 의미를 느끼게 하며, 탑두에는 우리나라 범종에 새겨진 전통무늬를 조각하여 소리의 원천을 상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심플하면서도 문명발달의 바탕이 되는 전기통신을 좀더 편안하고 좀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전기통신 발상지 기념탑은 왜, 어떠한 근거로 지금의 위치에 세워졌을까.

 기념탑이 서있는 위치가 1885년 갑신정변 이후 가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통신시설인 인천과 서울, 의주, 청국을 잇는 전신선을 관장하던 한성전보총국이 자리했던 곳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힌 것은 전기통신 100년사 집필위원이었으며, 전기통신역사학자, 향토사학자인 진기홍 옹이었다.

 현재까지도 정보통신 역사에 대한 왕성한 탐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진기홍 옹은 1968년 12월 발간된 ‘한국문화대계(고려대학교)’ 제3권 과학기술사편 한국체신사에 한성전보총국의 위치가 옛 사역원 자리였던 현 세종문화회관 부근이라는 내용을 발표하였다. 이 내용은 발표 후 지금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진기홍 옹은 우연히 만나게 된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선 가설당시 통서독판(統署督辦)이었던 김윤식의 서기로 일하던 황호일씨로부터 그가 소장하고 있던 문서 몇 건을 볼 수 있었고, 그 문서 중에 한성전보총국 초대 총판이었던 진윤이가 김윤식에게 보낸 간찰을 발견하게 되었다. 진기홍 옹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 내용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보관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으로 옛 사역원 터인 현재 기념탑이 서있는 부근이 최초의 전기통신 시발지였음을 확인해 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진기홍 옹이 확보한 간찰은 ‘한성전보총국이 횡방을 걸고자 하는데 이에 대한 가부와 장차 사역원의 구 현판을 제거하는 문제에 대한 지시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이 내용을 통해 한성전보총국은 처음에 사역원 건물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고 옛 사역원 터인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부근을 전기통신의 최초 발상지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통신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발상지를 찾기 위해 1986년 ‘전기통신사 편찬연구위원회’에 우리나라 전기통신 시발지를 찾고자 하는 연구를 의뢰하였고, 거기서 제출된 보고서인 ‘통신시발지 고증’에서 현재 기념탑이 서있는 장소가 옛 사역원 자리로, 최초의 전기통신이 운용된 한성전보총국이 자리하고 있던 곳임을 다시 확인하였다. 이 연구보고서에서도 옛 사역원 자리의 정확한 지번까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전기통신의 발상지 확인을 위한 회의를 거치는 등 옛 사역원의 위치를 지금의 장소로 정하고 이후에 이를 기념하는 박물관이나 조형물 건립의 필요성을 제시, 지금의 기념탑이 세워지게 된 동기가 되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전기통신의 효시가 되고 있는 조선전보총국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료수집 중에 조선전보총국의 초대 총판이었던 송사 홍철주의 손자인 홍준기씨와 연락(당시 LA거주)이 되어 송사유고를 입수하게 되었는데, 그 송사유고 내용중에 전보국 전보국기가 있었고, 그 내용 마지막 절에 있는 ‘이 공청은 옛날 사역원 자리였는데 이를 수즙(修葺)하고 약간의 방사(房舍)와 낭청(郎廳) 등을 분치(分置)하고 체번(替番)하여 장부에 기재, 빈객을 영접하고 전신의 사무를 집행하는 장소로 삼았다’는 내용으로 사역원 터가 청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가설한 서울과 부산간 전신선 가설과 운영을 맡은 조선전보총국이 1886년 한성전보총국이 이사 후 새롭게 업무를 시작한 곳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현재 기념탑이 세워진 곳은 조선전보총국과 함께 그 일대에 농상공부 체신국, 한성전보사, 한성전화사, 체신원이 자리했으며 일제시대의 체신국도 그 곳에 있었고 광복 후에는 광화문 전화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기념탑이 서있는 길 건너 맞은편 종로구 세종로 100번지는 분당으로 이전하기 전 한국통신 본사가 자리했던 곳으로, 현재 정보통신부와 한국통신 일부 부서, 광화문 전화국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은 예전에는 통신을 관장하는 본부격인 농상공부가 자리했던 곳으로 기념탑 일대가 초창기 전기통신의 요람으로 현재까지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1992년 제막식 당시 구청에서 뗀 지적도를 쌓아놓은 높이만도 30㎝ 이상이 되었다는, 당시 경희대 진용옥 교수(현재 경희대 정보통신대학원장)의 고증 과정에 대한 설명처럼 많은 어려움 끝에 현재 기념탑이 서있는 지금의 위치가 전기통신의 시발지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인데, 그것은 이제 겨우 100년이 조금 더 지난 역사의 흔적을 확인하는 데 든 노력으로 역사관리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전기통신 발상지 기념탑이 서있는 곳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에도 정보통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궁궐 가까이에 자리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빛이 들고 나는 광화문 바로 앞이라는 것도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하게 된다.

 1999년 12월 31일. 광화문 앞에서는 세기와 세기를 맞는 빛의 행사가 열렸다. 한 세기가 저무는 마지막 날 오후 5시 30분 17초, 전북 무안 변산반도 격포 해수욕장에서 채화한 천년의 마지막 ‘빛’의 씨앗이 500대의 오토바이에 의해 자정 카운트다운 행사장인 광화문 앞으로 봉송되었다. 모든 빛이 들고 나는 광화문. 바로 기념탑이 서있는 그 곳에서 천년을 마감하고 새 천년을 맞이하는 장엄한 빛의 이벤트가 펼쳐졌다. 이 또한 정보통신의 기본인 빛과 소리가 처음으로 발신된 곳에 대한 역사적 의미의 확인과 함께, 새로운 천년 우리 민족 도약의 가능성이 그 빛과 소리에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로 인식할 수도 있는 행사였다.

 전기통신 발상지 기념탑 전면에는 조병화 시인의 헌시 ‘빛과 소리의 고향’이 조각되어 있다. 제막식 당시에 시인의 음성으로 낭송된 ‘빛과 소리의 고향’은 이제 새로운 세기에서 세계 정보통신 사업의 새로운 시발지, 세계 정보통신 역사의 새로운 고향으로 자리매김 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기도 하다.

 

 빛과 소리의 고향

 

 이곳, 이 자리는

 우리나라 한국의 전기통신이

 처음으로 그 빛과 소리를 비친

 통신의 발상지

 

 지금은 온 우주로 전파되는

 모든 빛과 소리의 고향

 

 한국은 지금 눈부시게 발전하여

 온 세계와 더불어

 세계 안에서, 평화롭게 따뜻이

 한가족으로

 생활의 맑고 신속한

 그 빛과 소리로 은혜롭게 살아간다.

 

 공기로 가득 찼던 푸른 하늘은

 지금은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전파로

 가득 차서

 빛과 소리의 교신망이 되어

 세계 어디서나 이웃처럼

 

 보다 가까이, 보다 빠르게, 그 정보와 통신을

 보다 맑게, 보다 밝게, 보다 똑똑히

 들으며, 보내며, 생활할 수 있게 되어

 지금 온 세계는

 보다 가까운 한 마을이 되어 간다.

 

 이곳, 이 자리는

 우리나라의 빛과 소리가 탄생한 자리

 오, 역사여.

 

  - 조병화 -

 

 

 김영근 :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한국통신 과학관장)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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