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만큼 보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곳은 없다. 약을 만든다는 것이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는 일인지라 외부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제약업계의 e트랜스포메이션이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한양행 정보화담당임원(CIO)인 나충균 상무(54)의 어깨가 무거운 것은 이런 보수적인 업계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나가야 하는 책임 때문이다. 제약업계에서 기업의 정보화만을 담당하는 임원은 나 상무를 포함해 한손으로 꼽을 정도. 일반적으로 제약업계의 CIO는 다른 업무와 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지난 71년 이후로 약 30년간 전산업무만 진행해온 정통 전산 출신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인지 업계의 전산 후배들이 그를 바라보는 눈은 남다르다.
“12시간 지속성 콘택 600 아시죠. 신약개발 능력도 중요하지만 업무 프로세스를 짧게 정확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정보기술(IT)은 필수적인 요소랍니다.” 제약회사 CIO답게 약을 예로 들며 IT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제약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품질조절(quality control)은 결국 IT의 성과물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다른 산업에 비해 IT의 역할이 적을 수는 있지만 프로세스 혁신, 비용절감, 효율적인 인력관리 등의 효과를 계산하면 ROI는 쉽게 건질 수 있답니다.” 자칫 신약 개발에 대한 투자만을 강조하다 IT에 소홀해질 수 있는 회사와 항상 협상 테이블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논리다.
그가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e비즈니스 인프라 구축이다. e비즈니스의 가장 큰 강점은 고객들의 활발한 피드백. 그는 원활한 피드백을 위해서 전산환경을 웹환경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유한양행은 향후 3년간 50억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IT 통합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이달부터 시작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합한 e비즈니스 인프라를 구축, ‘e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다.
웹환경 교체, 전사적자원관리(ERP) 및 데이터웨어하우징(DW) 도입을 검토하고 고객관계관리(CRM)시스템은 추가로 개발 하는 등 대규모 프로젝트다. 특히 지난 67년 이후 자체개발에만 의존해왔던 유한양행이 처음으로 ERP 패키지 등 외부 제품을 도입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혁신적이다.
“가장 큰 걱정은 역시 내부 고객의 적응 속도입니다. 얼마나 반발을 줄여가며 프로젝트를 완료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현업인력과의 싸움이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보수적인 제약업체의 현업 담당자들과 원하는 e비즈니스 인프라 구축을 위해 어떻게 협상을 벌여나갈지 주목된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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