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논설위원
일본인들은 한때 서구에서 ‘일밖에 모르는 털 빠진 원숭이’라는 경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콧대 높은 영국 아가씨들한테서조차 일본 남자들의 인기는 높다고 한다. 아마 현지에 진출한 일본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최근 10여년간 불황을 겪고 있지만 산업경쟁력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인정하기에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만 우리와는 아직 많은 거리가 있다. 첨단산업이나 부품 분야에서 고급·고가제품은 일본산이며 우리는 그 대열에 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세계 시장에서의 평가다.
그런데 ‘브릭 앤드 모르타르 시대’에 이처럼 고착된 한일 양국의 산업구도가 앞으로는 달라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과거 일본이 한국보다 앞선 것은 산업사회에서 출발이 빨랐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따라서 정보사회를 향한 출발에서 우리가 먼저이거나 적어도 동일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주목을 끄는 것이 있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마치 단거리 경주라도 하듯 거의 동일한 출발선에서 달음질을 시작한 것이 바로 중소기업의 정보기술(IT)화다.
청동기시대에 청동제 무기를 가진 자가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듯 21세기 정보사회의 무기인 ’정보’로 무장하는 것에 양국 정부가 앞장서서 기치를 높이 든 형국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자원부가 지난 3월 1만개 중소기업의 IT화라는 프로젝트를 수립, 발표했다. 일본도 이에 뒤질세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의 IT화 추진 계획안을 내놨다. 우리나라는 2002년까지 1만개의 중소기업을 IT화한다고 했고 일본은 2003년까지 적어도 과반수의 중소기업이 전자상거래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게 목표다.
양국 모두 중소기업이 70% 가량을 차지하는 상황이고 보면 중소기업의 IT화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대기업은 어느 정도 자체적으로 IT화를 이뤘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IT화가 되면 사실상 기업의 IT화는 다 되는 셈이다.
중소기업의 IT화는 어찌 보면 개별 기업의 문제다. 그런데도 양국은 정부 차원에서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것은 그것을 중소기업에만 맡겨 뒀다간 시대 흐름에 뒤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중소기업은 막연하게 IT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 같다. 구체적으로 IT화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감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IT화가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을 인식했더라도 그들은 자금도 부족하고 전문인력도 모자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양국 정부는 중소기업의 IT화를 위해 인프라를 확충하고 제도도 개선하며 자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두고 있지만 정부의 시책은 혜택받는 업체가 한정되고 또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결국 상황이 그렇다면 정부는 직접적인 지원으로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점을 보완하는 데도 힘을 써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경영자가 자발적으로 IT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렵다면 중소기업이 IT화를 함으로써 기업활동에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예를 들자면 아직도 재래적인 방법으로 조달되고 있는 연간 8조원 규모에 이르는 정부 조달시장이라도 실질적으로 전자상거래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중소기업들은 IT화를 하지 말라고 해도 하려고 할 것이다. 정부나 정부 투자기관이 면대 면 조달에서 갖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투명성이 높은 전자상거래로 전환하는 것은 그것의 상징성이나 파급효과 면 등 여러 모로 중요한 일이다.
한일 양국이 중소기업의 IT화를 위해 거의 같은 출발선에 섰지만 결승 테이프의 임자는 2인3각 경기처럼 민과 관이 얼마만큼 목표를 향해 한몸처럼 잘 달리느냐에 따라 가름날 수밖에 없게 됐다.
jspark@etnews.co.kr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ET단상] 다양한 OS환경 고려한 제로 트러스트가 필요한 이유
-
2
[ET시론]AI 인프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해자(垓子)를 쌓아라
-
3
[보안칼럼]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리 방안
-
4
[기고] 딥시크의 경고…혁신·생태계·인재 부족한 韓
-
5
[ET시론]2050 탄소중립: 탄녹위 2기의 도전과 과제
-
6
[ET단상]국가경쟁력 혁신, 대학연구소 활성화에 달려있다
-
7
[콘텐츠칼럼]게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수립 및 지원 방안
-
8
[김종면의 K브랜드 집중탐구] 〈32〉락앤락, 생활의 혁신을 선물한 세계 최초의 발명품
-
9
[ET시론]양자혁명, 우리가 대비해야 할 미래 기술
-
10
[디지털문서 인사이트] 문서기반 데이터는 인공지능 시대의 마중물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