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정찰제 정착될까.’
한국썬이 최근 새로 발표한 울트라스파크Ⅲ 프로세서를 탑재한 ‘선 파이어’ 제품군부터는 그동안 관행처럼 부풀려지던 가격의 거품을 뺀 ‘가격정찰제’를 실시한다고 나섬에 따라 이의 성공 여부와 다른 업체의 동조 여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썬이 새로 도입키로 한 가격정책은 본사에서 전세계적으로 제시한 ‘리스트 프라이스’를 공개하고 여기에 현지에서 필요한 통관세·인건비·환율·서비스 등을 환산해 책정한 ‘표준가격’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 관행처럼 부풀려온 가격 거품을 제거하고 과도한 할인경쟁을 자제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서버업계는 치열한 가격경쟁과 할인율에 기댄 소비심리의 영향으로 원래 가격보다 2배 이상 부풀린 가격이 시스템 가격으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최근에는 최종 수주전에 들어가면서 80∼90% 정도의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이 관례처럼 통용돼 왔다.
그러나 직접 당사자인 한국IBM·한국HP·컴팩코리아·한국후지쯔 등은 한국썬의 이번 정책에 대해 그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제 시장에서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과도한 할인경쟁 자제와 가격 거품 제거 등 자정 차원에서의 동참 여부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보겠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썬의 반종규 상무는 “이번 가격정찰제는 미국 본사에서 아시아 지역 영업관행을 바로잡아 선의 가격정책과 더 나아가 제품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겠다는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라며 “새로 발표한 울트라스파크III 기반의 ‘선 파이어’가 시스템 설계나 프로세서 성능 면에서 획기적으로 개선된 만큼 일반의 우려와는 달리 가격과 성능에 대한 신뢰감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가격정찰제가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전망했다.
◇한국IBM
일단 기존 가격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가격경쟁이 심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전략 또한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한 경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썬의 가격정책이 국내 시장에서 먹혀들지 않을 경우 현재의 경기 후퇴 국면에서 자충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선 본사에서 펼치는 수익성 위주의 정책이 바로 리스트 프라이스를 높여놓고 수익을 더 높이자는 것인데 시장에서 과연 먹혀들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IBM의 할인경쟁 자제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국HP
기본적으로 할인경쟁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현재의 가격정책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할인경쟁을 주도한 선의 입장에서 이번 결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가격정찰제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아직 실시 전이고 타사의 정책인 이상 언급할 사항은 아니지만 현재의 고객들이 디스카운트율이 낮아진 선의 제품을 외면할 것이고 이에 따라 선의 딜러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얘기다. 대부분의 고객 취향 또한 값비싼 장비를 얼마나 저렴하게 구매하느냐가 담당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요소가 될 정도가 됐는데 쉽사리 이 같은 구매관행이 바뀌겠느냐는 지적이다.
◇컴팩코리아
시장의 수주 관행을 보는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그 이상적인 취지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굳어온 관행과 현실성을 고려하면 시장의 반응을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고객들의 구매 패턴이 하드웨어 단품이 아닌 ‘토털 솔루션’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제품가를 고정시켜 놓는다는 것은 오히려 가격의 유연성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즉 고객이 실질적으로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등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하는 부문의 유연성을 가로막는 데다 협력사와의 상품 구성이 빈번한 상황에서 자사의 제품에 한해 고정 정찰제를 실시하는 것이 시장의 가격안정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용할 것인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한국후지쯔
원칙적으로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을 목표로 한다는 측면에서는 이해가 가나 본사 정책이 얼마나 지사에 먹혀들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특히 지금까지 딜러들이 가격경쟁을 주도해왔는데 그동안의 관행을 버리고 선뜻 본사의 정책이라고 따라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딜러들을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본사의 정책이 제대로 전파되고 또 지켜질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한국썬의 가격정책을 주시하면서 탄력적으로 대응해나겠다는 방침이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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