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의 영화읽기>인디안썸머

한국영화에 대한 약진이 눈에 띄는 요즈음 기대를 모았던 또 한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노효정 감독의 데뷔작 ‘인디안썸머’는 제작과 배급,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가장 안정적인 모양새를 갖춘 영화다.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감독을 준비해온 이야기꾼의 영화라는 점과 ‘킬리만자로’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비치는 박신양을 비롯해 이혼 후 연기의 주가를 한층 더 올리고 있는 이미연의 출연도 관심을 끈다.

 북미지역의 늦가을에 갑자기 나타나는 여름의 화창한 날씨를 지칭하는 ‘인디안 썸머’라는 영화제목은 변호사와 피고인으로 만난 두 주인공의 짧은 사랑의 순간을 드러내주는 콘셉트이기도 하다.

 법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설전만으로 관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법정드라마는 그동안 국내에서 영화로 다뤄지기 어려웠다.

 그러나 노효정 감독은 악을 쓰고 진실을 밝히려는 법정드라마가 아니라 갈 곳을 잃어 방황하며 침묵하는 한 여자의 모습과 그녀를 사랑하는 순수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운 멜로 드라마를 그려냈다. 두 사람에게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욕실에서 팔과 다리를 그은 채 죽어 있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중인 이신영은 자신을 위한 모든 변호와 재판을 거부한 채 사형을 기다린다. 살해당시 입었을 거라 추정되는 피 묻은 옷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 모든 상황은 그녀를 범인으로 몰고 간다.

 순수함과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변호사 서준하는 그녀의 국선 변호를 맡게 되고 그는 사건에 대한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신영에게서 죽음보다 더한 삶에 대한 애착을 엿보게 된다.

 감독은 자신이 각본을 쓴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에서 드러난 법정 신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디안썸머’를 작업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영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법정장면은 다양한 카메라 워킹을 통해 공을 들인 것이 역력하다.

 서준하의 순수한 캐릭터를 대변해주는 초반의 룸살롱 싸움 장면이나 운동화의 설정, 무죄의 증거자료로 채택이 되는 손잡이의 비밀 등은 영화에 대한 공력을 느끼게 해주는 장치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일관된 콘셉트를 지속시켜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이 작품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법정이라는 긴장된 상황과 멜로 드라마의 틀은 서로 삐거덕거리며 제 목소리를 내기에 버거워하며 상당부분 모호함에 휩싸여 감정의 이입을 차단한다. 따라서 외국연수라는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승산도 없는 국선 변호를 맡는 준하에게 ‘정의와 진실은 항상 같이 하지 않는다’는 선배의 충고는 사회에 대한 하나의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순응처럼 밋밋하게 다가온다.

 또 법정과 접견실에서 스치는 준하와 신영의 사랑 역시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의 곡선을 이뤄간다.

<영화평론가 yongjuu@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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