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법원에서는 중고소프트웨어 유통에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킬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 도쿄와 오사카의 양 고등법원이 지난달 말 잇따라 내놓은 ‘중고게임소프트웨어 판매 합법’ 판결이 그것이다.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업체와 중고게임 판매업체간 법적 다툼에서 판매업체의 손을 들어준 이 판결은 당사자인 게임소프트웨어 업계뿐 아니라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붐’으로 활기를 띠고 있는영화 업계에까지 파장이 미칠 가능성이 있어 주목되고 있다.
중고게임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98년 7월 ‘중고 판매 금지’를 요구하며 코나미·남코 등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업체 6개사가 판매점 라이즈와 액트2 사를 오사카 지법에 제소하고, 3개월 뒤에는 판매점 죠쇼가 게임 업체 에닉스를 상대로 ‘중고 판매 금지 청구권 없음을 확인하는 소송’을 도쿄 지법에 제기함으로써 불붙었다.
쟁점은 게임소프트웨어가 저작권법에서 배포권이 인정되는 ‘영화 저작물’에 해당되는지 여부. 배포권은 ‘저작물의 판매나 대여 방법 등을 저작권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권리를 말한다. 개발업체는 ‘게임은 영화 저작물이니 배포권이 인정돼야 한다’며 ‘중고 판매를 허락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판매업체는 물론 이와는 반대되는 입장이다.
이런 엇갈린 주장에 대해 도쿄 지법과 오사카 지법은 각각 99년 5월과 10월 ‘판매업체 승소’와 ‘개발업체 승소’의 서로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항소심에서 양 고등법원은 게임을 ‘영화의 저작물’로 인정하면서도 개발업체에는 중고 판매를 허락할 권리가 없다고 저작권법의 배포권을 새롭게 해석, 판매업체의 손을 동시에 들어줬다.
이들 판결의 근거는 반포권을 입법화한 시대와 현재는 유통 형태가 다르다는 점이다. 배포권에 관한 조문(條文)은 영화관 필름을 배급하는 유통 방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게임처럼 패키지로 유통하는 저작물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량의 복제물이 제조되고, 그 하나 하나는 소수만 시청할 수 있는 것(도쿄 고법의 판결)에는 배포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게임을 대상으로 한 판결 내용이지만 확대 해석하면 비디오테이프나 DVD 등을 매개로 하는 영화 소프트웨어도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업계가 중고게임에 대한 판결인 데도 바짝 긴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까지 영화 업계는 DVD 등 영화 소프트웨어의 중고 판매를 사실상 묵인해 왔다. 중고 시장이 그다지 크지 않아 피해가 적기 때문인데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서적과 음악CD를 중심으로 중고 시장이 제법 커지면서 그 여파가 영화쪽에 미쳐 중고 DVD의 거래가 늘고 피해가 무시 못할 정도가 돼 법적 대응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중고 DVD 시장을 더욱 활성화시킬 뿐 영화 업계의 입지는 오히려 더 좁혀놓고 있다.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업체도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번 고법의 판결은 “세계적인 추세에 근거한 것이어서 대법원에서도 뒤집어질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법률 관계자들이 지배적이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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