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B2B시범사업이 주는 교훈

산자부가 모처럼 웃었다. 얼마전 발표한 B2B 시범사업 선정작업이 비교적 깔끔하게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당초 업종 선정방식과 내용을 놓고 많은 말들이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무려 1144개 업체의 신청이 몰리는 높은 호응도를 보이면서 대과없이 끝났다는 자평이다. 나타난 현상만 보면 산자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이 때문인지 정책추진시 항상 지원자금이 달려 업계의 인기를 끌지 못했던 정통부 콤플렉스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난 표정이다.

전략산업인 9개 업종에 이어 11개 업종을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번 B2B 시범사업은 선정방식이 정부 주도의 톱-다운에서 다운-톱의 형식을 빌려왔다는 점에서 일단 주목할 만하다. 또 신청을 통한 자발적인 참여유도와 심사라는 객관적인 틀을 도입했다는 점과 중소기업 컨소시엄 위주로 B2B 기반확충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도 긍정적 요소로 비친다.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큰 그림면에서는 제대로 방향을 잡은 정책이 나왔다는 반응이다.

공무원들의 말을 빌리자면 정책의 최고 덕목은 실현가능성이다. 물론 수혜자와 비수혜자간의 균형성, 장단기적 효과를 감안한 정합성, 그리고 투입대비 결과물에 대한 경제적 효율성 등 이것 저것 고려해야 할 변수는 많지만 이 모든 것은 정책이 실현되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학문과 정책의 차이를 굳이 말하자면 학문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지선을 추구할 수 있지만 정책은 현실적인 제약조건하에서 최적의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정책이 실패할 경우 야기될 후유증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정책실패의 후유증의 관한 한 이미 의보사태에서 체험하고 있듯 긴말이 필요없을 것 같다.

정책이 종종 차선 내지 차차선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B2B 시범사업에서도 이같은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무엇보다 당초 심사원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혔던 산업규모와 파급효과 등이 결국 협소한 업종과 파급력이 미미한 중소기업 위주로 결론을 냈는가 하면 글로벌 비즈니스로의 확산·연계 가능성 여부도 별로 고려되지 않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해당 컨소시엄들이 선정에만 급급, 국내 시장에서 현실화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글로벌 B2B의 대세를 무시할 경우 향후 세계시장 진출은 물론 기술표준화 중복투자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보완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 모든 정책의 훼손을 감수하면서 차선을 택한 것도 현시점에서 전통기업들의 e비즈를 위한 B2B 시범사업이 시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산자부가 축이 된 정부는 국가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전통산업의 e비즈니스화를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다. B2B 시범사업을 비롯해 1만개 중기IT화 촉진사업, 디지털공단사업 등이 대표적 정책이다. B2B 시범사업은 기업간 전자상거래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표준화를 촉진시키는 것이고 1만개 중기IT화 촉진사업은 기업의 사내정보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디지털공단사업은 밀집성이 높은 공단내의 기업끼리 경영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할 경우 공단내 기업들이 공동구매와 같은 상거래까지 실현해낸다는 포석이다. 이 세가지 사업은 전통산업 e비즈니스화의 3대 축으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그 중에서도 B2B 시범사업은 표준화를 통해 국가 e비즈를 획기적으로 앞당긴다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국가 e비즈의 초석이 될 B2B 시범사업의 공은 이제 해당 업체와 컨소시엄으로 넘어갔다. 정책실현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남은 셈이다. 하지만 당면과제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것뿐이다. 사업주체인 컨소시엄 구성만 봐도 그렇다. 일단 끼워 맞추기식으로 컨소시엄간 통합엔 성공했지만 애초 각사가 제출한 사업계획은 결국 자사만의 e마켓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작성한 것이다. 따라서 무리한 통합과정에서 ‘문서용’ 사업으로 변질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선정업종 중 건설, 물류 등 몇몇 대형 분야 외에는 전부 영세업종이어서 프로젝트의 주체세력이 해당 전통기업이 아닌 솔루션업체들이 될 공산도 크다. 이럴 경우 궁극적으로 자기주도하의 e마켓 구축이 꿈인 솔루션업체간 표준화 싸움이 촉발돼 결국 판이 깨질 수도 있다. 자칫 방심할 경우 차선책의 실현도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지금에 기로에 서있다. IT강국이 되지 않고는 무한경쟁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이번 첫 단추가 잘 채워져야 1만개 중기IT와 디지털산업단지 구축 등의 ‘3각편대 사업’ 성공이 담보될 수 있다. 이제 판은 깔렸다. 국가 전체의 경쟁력 제고를 가져올 중소업종의 e비즈가 1차 9개 시범사업에서 보듯이 특정 업체들의 욕심으로 또다시 구호성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사업주체들의 대승적 차원의 분발이 요구된다.

<김경묵 디지털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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