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경영>(2)경영프리즘-한국 재계가 젊어진다

한국의 재계가 젊어지고 있다. 삼성·SK 등 국내 주요 그룹사들은 본격적인 2, 3세 경영체제를 갖추기 위해 지분정리에 착수했으며 총수 후보자들을 경영일선으로 전면배치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로써 21세기를 여는 한국의 재계에는 3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에 이르는 젊은 2, 3세 경영자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재계의 이런 변화는 IMF관리체제 이후 해체가 점쳐져온 한국식 자본주의의 대명사인 ‘재벌’이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2, 3세 젊은 예비총수들의 관심분야가 인터넷·금융·생명공학 등 대부분의 재벌기업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21세기형 미래산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의 등장은 단순한 경영승계에서 나아가 선대가 일궈놓은 그룹의 비전을 결정짓는 중대한 임무를 갖고 있는 셈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현황=2, 3세 경영체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지난달초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재용씨를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로 선임, 본격적인 3세경영체제 구축에 나서면서 증폭됐다. 삼성에 앞서 3세경영체제 구축에 들어간 SK는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의 조카인 최태원 회장이 그룹 지주회사인 SKC&C의 대주주가 됨으로써 그룹지배구도를 완전 장악했다. 특히 최 회장은 동생 재원씨를 SK텔레콤 전무로, 사촌동생 최창원 SK글로벌 전무를 부사장으로, 고종사촌형인 표문수 SK텔레콤 부사장을 사장으로 각각 승진시키는 등 계열사 사장단을 측근인물로 재배치해 안정적인 3세경영체제를 꾀하고 있다.

이처럼 경영체제가 2, 3세로 이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그룹은 롯데·삼보·제일제당·현대산업개발·SK·삼성 등으로 국내 20여개 주요 그룹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2세경영체제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한 그룹은 한화를 비롯해 롯데·한솔·제일제당·신세계·삼보·현대산업개발 등이 꼽힌다. 효성이나 대림산업·쌍용 등은 2세경영체제를 위해 경영수업을 한창 벌이고 있는 경우다.

3세경영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한 대표적인 그룹은 LG와 코오롱. LG는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을 거쳐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에 이르고 있으며 코오롱 역시 고 이원만 회장으로부터 이동찬 명예회장, 이웅렬 회장으로 안정적인 승계작업을 마무리했다.

◇배경과 특징=2, 3세대의 등장은 한국의 재벌가가 지난 60년대부터 형성됐다고 볼 때 시기적으로 창업주 중심의 1세대 경영층의 고령화와 죽음이 1차 원인이다. 그러나 한국경제에 내재된 위기가 겉으로 드러난 90년대 상황에서 2, 3세대의 등장은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갔던 승계작업과 분명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창업총수의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이 부각되면서 그룹 안팎에서 변화요구에 직면한 재벌들은 현 상황에 대한 돌파구가 필요했으며, 여기에 2, 3세대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IMF이후 재벌의 부실상황이 겉으로 드러나면서 해체위기에 직면한 재벌가들은 디지털분야나 바이오 등의 생명공학, 금융 등 21세기 미래형 산업으로 사업구조를 바꾸는 것을 구조조정의 주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 섬유·제지·식음료 등 전통적인 2차산업에 의존해 있는 그룹들이 인터넷이나 생명공학에 뛰어들거나 구조조정에 있는 금융기업을 인수, 금융시장 진출을 위해 몸부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 3세들이 소위 ‘인터넷시대’와 더불어 부각되는 것은 이런 기업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창업주나 2대 회장이 아직까지 경영일선에 남아 있는 그룹들도 젊은 2, 3세대를 신규사업영역에 포진, 그룹안에 ‘작은 경영의 장’을 실제 주도하도록 하고 있다.

◇어떻게 볼 것인가=인터넷시대와 함께 등장한 40대 전후의 2, 3세대들은 치밀한 경영수업을 받았다는 면에서 창업 1세대에서 2세대로 이어진 경영승계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들 중 거의 대부분은 해외유학파로서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자격요건을 갖췄다. 이들이 겨냥하고 있는 신규사업영역이 글로벌한 표준을 무시할 수 없는 점에서 이들은 유리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개인적인 자격요건과 무관하게 이들의 등장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경우도 다수다. 경영권 승계방법이 지분인수를 통한 합법적인 형식을 갖췄다 할지라도 성격 자체가 ‘경영권 세습’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한국경제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온 재벌체제를 오히려 견고히 하는 ‘시대 역행적 행위’라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창업세대는 일가를 이루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지만 2, 3세대는 이론으로 무장됐을지 몰라도 경영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2, 3세대들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으며 안정적인 지배구도를 마련한 기업도 창업세대로부터 측면지원을 받고 있다.

21세기 한국 재계를 이끌어갈 2, 3세대들의 임무는 개별적으로는 선대가 일궈놓은 창업에 이은 ‘수성’이지만 이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이들의 역할이 절대 그곳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표>국내 재벌기업 경영승계현황

구분=그룹=경영승계현황

2세경영체제=롯데=신격호 회장→신동빈 부회장(46)

한화=고 김종희 회장→김승연 회장(49)

삼보=이용태 명예회장→이홍순 부회장(42), 이홍선 사장

제일제당=이맹희 회장→이재현 부회장(41)

한솔=이인희 회장=조동혁 부회장(51), 조동만 부회장(48), 조동길 부회장(46)

신세계=이명희 회장→정용진 부사장(33)

현대산업개발=정세영 회장→정몽규 회장(39)

효성=조석래 회장→조현준 전략본부 전무(33), 조현문 전략본부 전무(32)

대림산업=이준용 회장→이해욱 상무(33)

쌍용=김석원 회장→김지용 이사(29)

3세경영체제=LG=고 구인회 회장→구자경 명예회장→구본무 회장(56)

코오롱=고 이원만 회장→이동찬 명예회장→이웅렬 회장(45)

SK=고 최종건 회장→고 최종현 회장→최태원 회장(41)

현대자동차=고 정주영 회장→정몽구 회장→정의선 상무(31)

삼성=고 이병철 회장→이건희 회장→이재용 상무(33)

4세경영체제=두산=고 박승직 창업주→고 박두병 회장→박용곤 명예회장→정원 두산상사BG 부사장(39·장남), 지원 자동차BU장 상무(36·차남)→박용오 두산회장→경원 두산건설 영업본부 상무(37·장남), 중원 두산전략기획본부 뉴욕지사 과장(32·차남)→박용성 OB맥주 회장→진원 두산전략기획본부 TRI-C팀 차장(33·3남), 석원 두산벤처BG 대리(30)→박용만 전략기획본부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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