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자산은 인재입니다. 연구원들의 기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지난 2일 취임한 오길록 ETRI 원장. 그가 재수 끝에 ETRI 경영자로 변신한 뒤 처음 터뜨린 일성이다. 그동안의 구조조정과 ETRI 인력 유출 등으로 기가 꺾인 연구원들의 상황을 좋게 보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그를 처음 대하면 다소 어눌한 말투에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이 친근감을 더한다. 그렇다고 그를 얕잡아봤다가는 열이면 열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뭔가 큰일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에게 큰 부담이긴 하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오 원장이 처음 잡은 직장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곳에서 그는 수치해석·통계학·계량경제학에 관련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며 한국은행의 경제조사업무 전산화, 기업체 및 연구소의 경영정보 전산화, 방송통신대학의 학사업무 전산화, 기상청업무 전산화, 예비고사 전산화, 전화요금과 전기요금 같은 고지서 전산화, 관세업무 전산화 등을 국내 처음으로 주도했다.
특히 지난 87년엔 국내 행정전산망 주전산기 개발사업을 추진, 오늘날의 행정전산망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주전산기 개발사업은 당시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긴 했지만 20여개가 넘는 부처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데다 노하우 하나 없이 무작정 시작한 사업이었다.
20여곳의 부처 승인을 받는 작업부터 만만치 않았고 인력과 재원을 동원하는 것이 당시의 경제 규모로는 간단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설득과 인내로 연인원 930명에 1335억원의 예산을 들여 성공해냈다.
그는 원래 서울대에 입학할 때 천문기상학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아 4년 내내 고민했고 당시 처음으로 컴퓨터 언어인 포트란을 접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학과라는 것은 아예 없었고 컴퓨터도 경제기획원 통계청에 하나 있는 정도였다. 이때부터 컴퓨터에 흥미를 느껴 KIST 전산실에 위촉연구원으로 들어가면서 컴퓨터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어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이곳에서 오 원장은 당시만 해도 수냉식과 공냉식이던 컴퓨터를 관리하는 기계실에서 컴퓨터를 관리하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를 마치고 프랑스 국립응용과학원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집안에 원래 대머리가 없습니다. 대학 때 적성에 맞지도 않는 전공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해서 머리가 빠진 것 같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미국에서 유학하다 온 물리학과 권숙일 교수를 만나 컴퓨터 공부를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찾는 계기가 됐습니다.”
처음 들어간 KIST에서 컴퓨터 분야의 원로인 성기수 박사를 만난 것도 오 원장에게는 행운이었다. 지금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명예위원으로 있는 성 박사 밑에서 프로그램을 작성하며 컴퓨터 연구 분야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었다.
“본적이 KIST 기숙사로 돼 있는 사람은 제가 처음일 겁니다. 결혼하면서 혼인신고를 해야 하는데 사는 곳이 마땅치 않아 기숙사 주소를 적은 것이 본적이 됐습니다. 과학기술의 산실을 본적으로 두고 있는 셈이죠.”
오 원장은 대학 때부터 필요에 의한 조직을 꾸리고 만드는 데 탁월했다. 공부를 너무 많이 시켜 쓰러지는 학생들이 속출하자 운동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테니스클럽·요트클럽을 조직했다. 프랑스에선 바둑클럽 등을 만들어 어학 훈련에 활용할 정도로 그의 단체조직 능력은 탁월했다.
그런 그가 당찬 추진력과 리더십을 앞세워 ETRI 재건에 나섰다.
“CDMA처럼 연구개발(R&D)의 성공모델을 창출하기 위해선 연구 기능이 중심이 되는 연구기관으로 재설계해야 할 것입니다.”
오 원장은 이를 위해 우선 보따리 연구에 나서고 있는 소속 연구소의 과제를 정리, 중·대형화함으로써 안정적인 연구 풍토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것이 그의 첫번째 목표다.
ETRI의 주력부대인 회로소자·네트워크·무선방송·컴퓨터 소프트웨어 4개 분야에 연구력을 집중시키고 중·대형 과제를 수행, ‘제2의 CDMA’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향후 ETRI의 존립을 보장할 수 있으리라는 예측에서 비롯됐다.
새로 운영을 맡게 된 ETRI의 분위기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우선 연구원들이 뭔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내는 눈치다. 틈만 나면 연구원들이 일하는 곳을 찾아 무슨 애로가 있는지 돌아보며 현장의 여론을 살핀다. 이것이 그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고 끝이다.
“과학자로 인생을 시작해 과학자로 끝을 맺고 싶다” 는 오 원장. 그의 곁에는 언제나 인재가 넘쳐나기에 ETRI의 어려움도 슬기롭게 이겨낼 것이라는 정보통신업계의 기대를 그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력>
△68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천문기상학과 졸업 △6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산개발부 △7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과 석사 △78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컴퓨터연구부장 △81년 프랑스 국립응용과학원 컴퓨터공학과 박사 △87년 ETRI 행정전산망 주전산기 개발본부장 △88년 ETRI 컴퓨터연구단장 및 정보기술개발단장 △96∼98년 ETRI 부설 시스템공학연구소(SERI) 소장 △97∼99년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 회장 △98∼2000년 ETRI 컴퓨터·소프트웨어기술연구소장 △현재 한국소프트웨어컴포넌트컨소시엄 회장
<대전=박희범 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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