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물유통협의회 우인회 회장
게임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많다. 혹자는 자금부족이나 기반기술 미비를 이야기할 것이다. 게임물 유통을 10년 이상 해온 필자의 경험으로는 규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문화상품으로서 창작물이기 때문에 규제가 많을수록 창작의욕이 떨어지고 산업과 시장구조를 왜곡시킨다는 것은 그동안의 정부 정책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수년간 위력을 발휘하다가 몇년 전에 폐지된 특소세는 부작용만 낳은 규제의 대표적인 예다. 과소비를 방지하고 수입완화 효과와 세수확보가 목적인 특소세는 밀수만 양산하고 업계에 불공정거래를 조장했다. 3만원짜리 8비트 게임기에 특소세가 부과되어 중소 게임기제조자들이 원가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특소세를 탈루했다. 법을 지키지 않는 업체는 경쟁력이 있고 법을 지키는 업체는 경쟁에서 탈락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일본 문화상품에 대한 규제도 비슷한 사례다. 현재는 다소 완화됐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게임에 대한 규제는 대단했다. 게임 배경에 일본 글자로 쓰인 간판이 나타나거나 일본말이 한마디만 나와도 심의불가 판정을 받았다. PC게임의 붐이 일기 전 우리 게이머들은 일본 비디오게임에 몰입했다. 하지만 게임내용과는 무관하게 일본 글자나 말만 나와도 무조건 수입불가 판정을 받았다. 밀수품과 불법 복제품이 난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게임 곳곳에 일본글자가 나오든 말든, 게임해설이 일본말로 돼있든 말든 과거 대동아전쟁이나 일본강점기를 미화하는 등 민족 자존심을 건드리는 내용만 없다면 심의를 내준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생기랴. 대부분 일본 게임의 경우 그저 아이들이 즐기는 어드벤처놀이나 스포츠·팬터지·액션·롤플레잉 등 큰 문제가 없는 내용이 다수다. 일본글자 하나에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사실 자체가 민족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상당히 완화됐지만 일본문화 규제가 극심하면 할수록 밀수품과 복제품이 난무해 시장을 왜곡시키고 수많은 전과자만 양산할 뿐 결코 민족자존심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잘못된 시각 때문에 생겨난 규제를 일일이 거론하자면 끝이 없다. 말을 바꾸어 정부가 규제를 철폐했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해보자. 모두에 언급한 특소세 문제는 정부의 규제가 없어졌을 때 산업과 시장이 활기를 띠고 제자리를 잡아간다는 점을 웅변해준다. 1999년 말 게임기에 부과되던 특소세가 사라지면서 공정경쟁의 여건이 마련됐고 밀수사례도 격감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정부는 게임기에 대한 특소세 폐지로 게임기산업을 육성하는 효과를 본 것이다.
사실 규제나 철폐는 정책당국자의 열린마음 하나로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비용 없이 산업육성이라는 측면에서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왜곡된 시장을 회복시키고 창작의욕을 북돋워 산업에 활기를 준다. 규제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비용도 줄고 비효율도 없어진다.
다행히 정부도 최근들어 각종 규제를 철폐 또는 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지만 업계 종사자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자율적인 등급매김과 사후심의제도 정착이 필요하다.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하는 사전심의제도는 게임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처럼 제작자 자신이나 업계의 자율적인 결정으로 등급을 정해 판매하고 판매후에 문제가 되는 제품에 대해서만 집중관리함이 마땅하다. 누가 보아도 ‘전체 이용가’ 등급을 받아야 할 어드벤처·스포츠·보드게임 같은 것도 예외없이 사전심의를 받는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낭비다. 폭력과 음란이 지나치거나 미풍양속이나 민족자존심을 훼손하는 표현물은 자율규제 단계에서 걸러질 것이다. ‘12세이용가’ ‘15세 이용가’와 같은 애매한 등급의 표현물이 문제인데 이것은 업계자율로 등급을 매긴 후 유통을 시키면서 최종판단을 기존의 영등위나 소비자단체, 혹은 관련 시민단체에 맏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현재 영등위는 과감한 기구개편이 필요하다. 규제기관의 규제인원을 줄이지 않고는 규제완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게임업계에는 규제보다 지원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 게임산업이 국제화돼 있는 상황에서 규제란 전혀 불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필수불가결한 규제만 제도화하고 이를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철저한 관리를 통해 우리는 기회균등, 공정경쟁, 부정방지, 청소년보호 등을 신장시키는 동시에 문화산업 전반
이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으리라. 일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많이 본 뉴스
-
1
모토로라 중저가폰 또 나온다…올해만 4종 출시
-
2
단독개인사업자 'CEO보험' 가입 못한다…생보사, 줄줄이 판매중지
-
3
LG엔솔, 차세대 원통형 연구 '46셀 개발팀'으로 명명
-
4
역대급 흡입력 가진 블랙홀 발견됐다... “이론한계보다 40배 빨라”
-
5
LG유플러스, 홍범식 CEO 선임
-
6
5년 전 업비트서 580억 암호화폐 탈취…경찰 “북한 해킹조직 소행”
-
7
반도체 장비 매출 1위 두고 ASML vs 어플라이드 격돌
-
8
페루 700년 전 어린이 76명 매장… “밭 비옥하게 하려고”
-
9
127큐비트 IBM 양자컴퓨터, 연세대서 국내 첫 가동
-
10
'슈퍼컴퓨터 톱500' 한국 보유수 기준 8위, 성능 10위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