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논설위원 jspark@etnews.co.kr
요즘 세계경제를 보는 눈은 「위기설」과 「회복설」로 엇갈린다.
위기설의 근거로는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일본 경기의 불확실성을 든다. 마침내 미국 나스닥 지수가 2000선 아래로 추락했고 일본 닛케이 지수도 지난 85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것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쳐 세계적 공황으로까지 치닫지 않겠느냐는 것이 위기설의 시각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최근의 주가하락은 빠른 정보흐름 때문에 악재가 신속하게 과대포장된 것이며 미국 실물경제가 그런대로 활발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조만간 주가가 회복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비극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종종 발생한다.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대부분 나을 수 있겠지만 지나치면 탈이 난다. 현실을 너무 낙관할 때나 비관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1876년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의 눈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프랑스 박물관에 소장된 루이 16세의 일기에는 혁명 당시에도 「별일 없었다(rien)」고 적혀 있다. 그해 7월 12일 자코뱅 당원들이 『무기를 들자』고 나서자 그는 신하에게 『소요가 있었느냐』고 물었고 『소요가 아니라 쿠데타다』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일기에는 계속 「별일 없었다」고 16일까지 적혀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던 사태를 어쩌면 통치자였기 때문에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팔자 도망은 독 안에 들어도 못한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루이 16세의 죽음은 숙명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또 진보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가 현실인식을 정확하게 했더라면 상황은 조금이라도 달라졌을 것이다.
또 현실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해 비관으로 흐를 때도 문제는 발생한다.
95년까지 선진국들의 잇따른 투자로 호황을 구가하던 태국은 96, 97년 들어 경제가 나빠졌다. 태국 바트화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태국 정부는 계속해서 바트화를 매입, 환율을 방어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그에 앞서 투자자들이 심리적 공황상태인 패닉(panic)에 빠져 들었다. 그들은 태국 정부가 환율 방어에 소극적인 것을 보고 바트화를 일제히 팔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바트화는 몇 달 사이에 가치가 50% 이상 떨어지면서 외환 보유고는 완전히 고갈됐다. 그것이 태국을 외환위기(IMF)체제에 돌입하게 한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현실에 대한 인식도 뒤지고 또 사람들이 비관적으로 흘러 집단적으로 패닉에 처할 때 발생한다.
1929년 3월 4일에 취임한 미국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미국 경기가 장기적으로 침체돼 마침내 증시가 폭락했던 10월 24일인 블랙 투즈데이에도 연설을 통해 『모든 게 기막히게 좋다(terrific)』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어리석은 연설이었다. 후버 대통령은 그로 인해 미국 역사에서 가장 경멸받는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불행은 쌍둥이로 온다」고 했던가. 설상가상으로 증시가 폭락하자 패닉에 이른 미국 투자자들이 일제히 투매에 나섰고, 이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함으로써 미국은 대공황으로 직행했다. 대공황은 1200만명을 실업자로 만들었으며 5000개의 은행과 3만2000개 이상의 기업을 파산으로 몰고 갔다.
지금 세계경제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이 패닉의 피드백이다. 패닉으로 경제에 대해 신뢰가 상실되면 통화 투매와 이자율 상승, 경기하강을 초래하고 그것은 다시 기업이나 은행·가정의 금융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 결과는 패닉에 동참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최악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경제상황에는 불확실성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정확한 상황인식과 대처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그에 못지 않게 지나치고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으로 패닉의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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