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캘리포니아주가 관심 지역으로 부상한 것은 1849년 골드러시(gold rush)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실리콘밸리 벤처의 효시는 1938년 스탠퍼드대학내에 창업된 휴렛패커드다.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은 1971년 한 신문기자가 처음 쓰기 시작, 오늘에 이르게 됐고 이 지역이 하이테크 산업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1993년 IT산업, 특히 인터넷산업이 번성하면서부터다.
골드러시 후 150년, 벤처기업의 역사 60년, 본격적인 실리콘밸리 가동 30년으로 본 실리콘밸리는 꽤 나이가 든 지역임에는 틀림없다. 실리콘밸리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된 것은 인터넷산업의 출현에 따라 인터넷이라는 인프라가 지구촌의 거리를 단축시켜 놓은 것과 때를 같이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의 선도로 1960년부터 벤처기업 시대가 개막됐다. 이때부터 동부 중심의 기술과 경제의 축이 서서히 실리콘밸리 지역으로 이전하기 시작해 1990년대는 실리콘밸리 패권시대로 돌입했다.
이때부터 「하루평균 62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한다」 「실리콘밸리 지역엔 약 25만명의 백만장자가 몰려있다」는 등 이 곳의 부를 과시하는 미사여구가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사실 인텔, 시스코, 야후 같은 인터넷 관련 회사들이 최고 전성기인 99년에는 미국 경제성장의 3분의 1을 담당했고 지난 93년부터 99년까지 고용한 인원만도 250만명에 달했다. 그래서 미국 동부, 중부에서 젊은이들이 실리콘밸리 드림을 좇아 찾아오고 아시아, 유럽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자 실리콘밸리로 하나둘씩 밀려들었다. 비즈니스 출장객과 비즈니스를 가장한 관광객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호텔은 만원이고, 호텔 방값은 몇배로 뛰었다.
화려한 성공 뒤에는 반드시 사각지대가 있게 마련이다. 연평균 소득 8만달러의 부자들이 모여 사는 실리콘밸리의 물가는 세계 최고인 뉴욕과 비슷하다. 집값과 사무실 임대료는 미국 정상급이다. 원룸 임대료 월 2000달러, 한달 최저 생활비 30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하이테크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 버티기에는 너무 힘겹다. 실리콘밸리에는 흑인이 거의 없고 여자도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거지도 없다. 평범한 직업으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고급환경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실리콘밸리의 환경은 백만장자 입맛에 맞추어져 있다. 보통 사람들도 언젠가 백만장자가 될 꿈을 꾸며 백만장자의 흉내를 내고 있다.
실리콘밸리에는 일터만 있고 쉼터가 없다.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가서 잠만 잔다. 친구들과 만나 식사를 할 때도 일 얘기밖에 없고 일 얘기도 곧장 주식과 스톡옵션 얘기로 번진다. 언제 대박 터지나, 언제 백만장자가 되나 밖에는 관심거리가 없다. 문화공간이나 위락시설이 없어 즐기려면 휴가를 내 비행기를 타야 한다.
회사들이 실리콘밸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실리콘밸리를 떠나고 있다. 지난 2000년은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해였다. 닷컴의 몰락과 대량해고, 실업률 상승, 높은 물가, 주가폭락에 의한 상대적 빈곤감은 실리콘밸리를 천당에서 지옥으로 끌어내린 느낌이다. 2000년 3월 10일 5048포인트에 오른 나스닥은 현재 그 절반인 2000포인트 전반에서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다.
90년대엔 창업에서 IPO까지 가는 데 걸리는 기간이 평균 4.6년에 불과했다. 그만큼 최단기에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실리콘밸리 사람들에게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여유를 찾아 보기 어렵다.
불 마켓(bullmarket:강세장)때 구입해 월불입금 때문에 되팔려 내놓는 집들이 점점 많아지고 외국인 전입자(newcomer)의 줄은 짧아지고 있다. 스톡옵션으로 희희낙락하던 직장인들이 노조를 결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구경제 체제로 복귀하는 느낌이다. IT산업, 인터넷산업이 결코 통뼈가 아니라고 자조하는 소리도 나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이테크 기업이 문을 닫고 있다. 문닫는 식당도 생기고 불꺼진 아파트가 늘고 있다. 실리콘밸리 드림을 좇는 젊은이들의 어깨는 처지고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종말이 오고 있는가!
<스탠퍼드대 객원교수 oh@computing.soongsi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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