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살아있다>(1)문제점과 개선방향:장윤종

◆장윤종 KIET 디지털경제실장

정보기술(IT) 제조업은 우리 경제를 받쳐주는 대들보다. 지난해 IT제품은 674억달러어치를 수출해 전체 수출의 39%를 차지했으며 225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해 전체 무역흑자 121억달러를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0대 수출품목 중에서 반도체와 컴퓨터가 1, 2위를 차지하고 무선통신기기가 5위, 일반전자부품이 10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IT제조업은 수출역군으로서, 성장과 무역흑자의 일등공신으로서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IT제조업은 외형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큰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최근의 시장과 기술의 변화는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산업의 저변을 이루는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취약한 가운데 몇몇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산업구조의 불안정성이 그것이다.

반도체는 거의 전적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에 의존하고 있으며, 컴퓨터는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에, 무선통신기기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그리고 디지털가전은 가전 3사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IT제조업의 취약한 산업구조는 다른 산업에 비하면 덜하다고 할 수 있지만 IT제조업이 적어도 10년간은 우리 경제의 성장과 수출의 선도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80년대 중반 유학시절에 어느 교수님께서 당시 세계시장을 석권하던 일본기업들의 경쟁력 원천이 산업에 있는 것인지 기업 자체에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 질문은 산업은 단순한 기업들의 합이 아니라 유기체적인 시스템이며 일본기업의 경쟁력 원천은 바로 그 산업시스템에 있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1990년에 마이클 포터가 「국가의 경쟁우위론」에서 강조하고, 최근 OECD에서 심도 있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산업 클러스터(industrial clustering)라는 개념은 산업의 시스템적 성격을 구체화하고 있다. 산업 클러스터란 한 산업이 산업내 기업들간, 그리고 해당산업과 전후방 연관 산업간 네트워크가 얼마나 잘 이뤄져 있고 지식의 창출·전파·활용이 얼마나 활발하게 일어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다. 산업 클러스터는 하나의 시스템으로써 유기체와 같이 시행착오를 거치고 학습효과를 축적하면서 진화한다. 진정한 산업경쟁력은 산업 클러스터가 성공적으로 형성됐을 때 성립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IT제조업은 과연 진정한 산업경쟁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산업경쟁력이 어느 정도 있는지, 산업 클러스터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는 부가가치의 생산이 어디에서 얼마나 창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치사슬(value chain)의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원천기술에 대해 매출의 5%에서 10%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핵심적인 부품들은 수입에 의존하며 열심히 생산한 제품이 경쟁이 심해 가격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우리 IT제조업의 구조는 산업 클러스터가 제대로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정부도 IT제조업의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는 있으나 시스템으로서의 산업 클러스터 관점보다는 기술·부품·판로 등 개별사안을 중심으로 한 미시적 접근에 치중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얘기한다. 산업 클러스터의 핵심은 팀워크 플레이가 얼마나 잘 이뤄지도록 하느냐에 있다.

정부의 IT제조업 지원정책은 산업 클러스터의 관점에서 어느 관계들이 취약한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나무 하나를 살리는 노력보다 숲의 정상적인 진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시장친화적인 산업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최근 IT제조업을 둘러싼 시장·기술·경쟁환경은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가전산업은 디지털 기술혁신에 입각한 디지털가전이 성장기로 접어들고 있으며, 컴퓨터는 통신과의 결합으로 포스트PC 시대가 열리고 있다. 통신기기는 제3세대 이동통신단말기 시장이 태동기를 맞고 있으며 광통신장비가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는 급성장하는 모바일 시장으로부터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속에 기술력을 가진 일본과 미국, 유럽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이들 새로운 제조업 시장의 쟁탈전에 뛰어들고 있으며 중국을 비롯한 화교권의 IT제조업이 빠르게 뒤쫓아오고 있다.

우리의 IT제조업이 진정한 경쟁력을 가진 산업 클러스터로 진화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기본에 해당되는 정보와 기술에 관해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정보에 관해서는 기업들이 관련분야의 최신 동향에 어둡고 기업들간 정보공유도 거의 되지 않는 정보부족과 정보의 유통경색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보수집을 위한 별도의 기관을 설립한다고 해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관련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신뢰와 상생의 기업문화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관련협회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협회는 기업들간의 신뢰구축과 상생발전의 장이 돼야 하며 정보시스템의 구심체로 거듭나야 한다. 정부는 협회가 명실상부하게 정보의 본산이 되도록 지원하고 협회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정보를 교환하도록 유도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선두에 서 있는 대기업들의 솔선수범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기술과 관련해서는 기업들간 기술개발 협력을 유도하고 대학과 연구소가 능동적으로 협력에 참여하도록 하는 노력이 보다 내실 있게 이뤄져야 한다. 최근 몇년간 산·학·연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다각적으로 추진되고는 있으나 결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미흡해 학습효과가 불충분한 가운데 시행착오가 되풀이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된다. 기술개발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다. 비록 왕도는 없지만 기업의 도전의지와 전문가의 역량이 잘 결합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발전이 충실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최근 벤처기업 열풍이 불면서 IT제조업의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업계와 정부는 세계시장의 새로운 도전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IT제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데 힘과 지혜를 합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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