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9회-사우디아라비아

어느덧 21세기의 두번째 장이 열린 지금, 모든 산업은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전세계 모든 국가가 IT시장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계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는 회교도의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IT에 접근하고 있다. 사실 사우디는 아직 「뉴밀레니엄」을 맞지 않았다.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메드가 메디아로 이주한 해를 원년으로 한 「헤지라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사우디는 1421년이다. 99년말 전세계가 21세기를 맞아 요란스러운 행사를 벌이고 있을 때도 사우디만은 차분히 그저 또 다른 새해를 맞았을 뿐이다.

하지만 사우디의 사막에도 조용하지만 분명 「IT바람」이 불고 있다. 다만 그들 나름대로의 전통과 기준에 맞춰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98년 방한했던 사우디의 압둘라 왕세자는 『원유 수출에만 매달리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IT혁명에 동참하고 있는 사우디의 IT정책을 듣기 위해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사우디대사관에서 살레 엠 알 라지 주한 사우디대사를 만났다

<약력>

△44년 사우디아라비아 알 카지 출생 △64년 사우디 감사원 근무 △72년 주미 사우디대사관 육군무관 사무소 근무 △84년 주미 사우디대사관 1등서기관 △89년 주미 사우디대사관 참사관 △96년 사우디 외무부 경제연구 국장 △98년 주한 사우디대사 부임

-지난 98년 여름에 부임했으니 벌써 한국에서 맞는 세번째 겨울입니다. 한국 생활은 어떻습니까.

▲이곳에 오기 전에는 한국과 사우디의 문화가 많이 다를 것으로 생각했는데 비슷한 점이 많아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모습과 자녀들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풍습, 심지어는 한국인들이 명절 때 즐기는 놀이(윷놀이)도 사우디와 비슷합니다. 특히 여러 세대가 모여 함께 생활하는 것은 우리와 똑같아 보기 좋습니다.

한국에 온 이후 업무 차원의 출장외에 제대로 된 여행은 자주 못했지만 부산 및 설악산 등지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요즘은 실력은 좋지 않지만 용평 근교에 스키를 타러 자주 갑니다.

한국 생활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언어인데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도 드물고 무엇보다 길거리 상점의 표지판에 영어 설명이 부족해 생활에 불편이 많습니다. 내년이면 월드컵도 열리는데 이런 점은 꼭 개선돼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년간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 IT산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전세계가 놀라고 있듯이 저도 한국 IT산업의 빠른 발전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 있어 IT산업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이는 또 저에게 부러운 점이기도 합니다. 선진국에 비해 IT분야가 뒤떨어져 있는 사우디로서는 한국의 IT산업 발전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사우디가 여러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양국이 서로 협력할 경우 IT분야에서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IT산업 현황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사우디의 IT산업은 지난 99년부터 육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름대로 활발한 해외 교류를 통해 IT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우디 곳곳에서 매주 IT관련 세미나 및 전시회가 열릴 정도로 IT에 대한 기업과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며 정부도 PC 보급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3년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우디 국민들은 PC 모니터를 보면 TV나 오락기를 떠올렸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PC로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얻는 등 IT를 일상생활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e메일로 본국에 있는 가족들과 수시로 연락을 취하며 그리움을 달래기 때문에 IT가 주는 혜택을 누구보다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인터넷에 대한 검열 및 통제가 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입니다. 사우디 정부는 반이슬람적인 내용과 음란물 등 유해한 콘텐츠는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들의 필터링을 통해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인터넷이 가져다 주는 혜택을 원할 뿐, 부작용은 원치 않습니다. 또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전통과 가치를 지키며 인터넷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자살 사이트」의 예를 들어봅시다. 한국 정부가 자살 사이트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사이트 운영자에게 강한 처벌을 가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미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사우디 정부는 바로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 사전에 유해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해 사이트」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또 이러한 검열이 e비즈니스를 추진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텐데요.

▲물론 검열에 대한 반발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국 웹사이트를 모두 접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호기심일뿐 강한 반발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유해한 사이트만을 차단하기 때문에 이러한 검열이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우디는 거주인들 중 30%가 외국인 노동자기 때문에 열린 사회문화를 가지고 있고 정부도 개방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방정책과 최근 정부의 탈규제 노력이 맞물려 오히려 사우디의 기업들은 e비즈니스를 추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IT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무엇입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우디 IT산업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아직 외국의 대형 IT업체들과 상대할만한 기술력이 부족하고 고급인력도 모자랍니다. 또 전자상거래 보안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되지 않아서 일반인들이 전자상거래 이용을 주저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따라서 사우디는 당분간은 IT산업에 대한 투자에 치중할 계획입니다. 즉 사우디 업체가 외국에 진출할 여건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한 많은 외국 업체들을 사우디로 불러 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우리 것으로 소화할 것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바로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간의 협력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한국 업체들이 IT시장의 성장력이 무궁무진한 사우디에 와서 사업을 한다면 한국업체들은 수익을 올림과 동시에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국 업체들은 사우디를 중동 IT시장의 진출거점으로 활용함으로써 해외사업 확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한국 업체들로부터 관련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기 때문에 IT산업 발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업체들이 사우디 현지 인력을 고용해 고용창출 효과가 발생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사우디의 하이테크 인력 양성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지난 70∼80년대 한국의 건설업체들이 사우디에 진출해 많은 수익을 거두고 사우디는 도시화를 이룬 것처럼 양국간의 협력은 적지않은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전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찰청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몇몇 업체들과 지능형교통시스템(ITS) 프로젝트를 논하고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입니다. 관계자들이 한국을 다녀간 것은 알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사우디 정부가 ITS 구축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우디는 넓은 영토(한반도의 약 10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속도로의 경우 5∼6시간을 달려도 집 한채 볼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인적이 드문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운전자의 신고 없이도 사고 발생 사실이 자동으로 중앙 시스템에 통보되고 구급차량이 사고 현장으로 급파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ITS는 필수적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리고 끝으로 과거 건설업체의 「중동신화」를 재현하고 싶어하는 한국 IT업체들에 조언을 부탁합니다.

▲중동에 건설 붐이 일 때 한국의 건설업체들은 사우디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사람들은 대규모 공사를 정해진 예산과 기한내에 마치는 한국 업체들의 성실성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 업체들은 어느 나라 업체들보다 사우디 진출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몇몇 업체들이 해당 프로젝트만을 끝내고 사무실을 철수하는 모습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규모가 작더라고 사우디 현지에 사무실을 열어놓고 상주 직원을 배치해 지속적으로 사우디 업체들과 연락을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우디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情)」을 중요시 합니다. 한국 업체들은 이 점에 유념해야 합니다.

한가지 더 주문한다면 이제 한국과 사우디는 단순한 「바이어-셀러」의 관계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파트너시십을 맺는 데 함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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