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취재기- IT가 희망이었네!>5회-486급 PC는 한대도 없었다

평양정보쎈터(PIC) 본원은 18개 연구실이 큰 축을 이루고 각 실은 업무에 따라 1∼3개의 연구그룹으로 나뉘어있다. 연구실에는 적게는 6명, 많게는 20명의 연구원들이 소속돼 있었다. 18개실 중 남측 대표단이 견학한 곳은 다매체연구실·문서편집실·서체개발실·전자출판실·CAD실·언어정보연구실·기계번역실·체계실·망구축실·경영프로그램실·프로그램종합실·음악창작실 등이었다.

전체 안내는 최주식 총사장이 직접 맡았다. 연구실 견학은 내게 있어 방북일정 중 최고의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남측에서는 여러명의 정보기술(IT) 기업가가 방북했지만 어떤 곳이든 컴퓨터센터 내부를 속속들이 견학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자인 나로서도 북측의 정보처리시설 대부분이 486급 PC일 것으로 짐작만 하던 터였다.

놀라움은 첫번째 견학장소인 다매체(멀티미디어)연구실을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다. 15평 남짓한 방에는 약 20대의 PC가 설치돼 있었는데 예상했던 486급 PC는 한대도 없었고 대신 펜티엄급 PC와 애플의 파워맥 등 고급 기종이 골고루 구비돼 있었다. 엡손과 텍트로닉스의 레이저프린터도 여러대 눈에 띄었다. 평양통신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PIC에 들어왔다는 막내 연구원 김용화씨(25·여)는 PIC의 PC는 펜티엄Ⅱ 400 ㎒급과 펜티엄Ⅲ 600㎒급이 대부분이라고 소개했다.

기종 브랜드로는 앱티바(IBM)·델·애스파이어(에이서)·프리자리오(컴팩)·파워맥8600(애플)·필립스 등이 주류를 이뤘다. 다른 방에도 기종이 한 브랜드로 통일된 곳은 없었는데 이에 대해 최주식 총사장은 『미국의 제재가 심해 중국·싱가포르 등을 통해 몇대씩 구입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다매체실에서는 「반만년의 력사와 조선의 민속」 「맑은 아침의 윈도용 나라」 등의 콘텐츠

들을 개발하고 있었다.

문서편집프로그램실에서는 지난 86년 초판이 나온 조선글워드프로세서 「창덕」의 업그레이드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창덕은 올해 1월 버전 6.1이 발표됐으며 현재 7.0이 준비되고 있었다. 창덕 6.1은 「MS워드2000」과의 완벽한 호환성이 가장 큰 특징이었지만 조선글입력처리프로그램 「단군 4.8E」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체제실에서 개발한 단군은 과거 남쪽에서 MS 도스와 윈도3.1이 한글화되지 않았을 때의 「한메한글」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으로 보였다.

서체개발실은 200개의 서체를 모은 「PIC폰트집」과 자동서체생성도구 「명필」 등을 개발한 곳이었다. 3개의 방으로 구성된 서체개발실에는 20여대의 컴퓨터와 HP의 레이저젯1100 등의 장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서가에는 「인사이드 COM」 「HTML3.2」 「비주얼# 6.0」을 비롯해 「쿼크익스프레스 4.0J」 등 매뉴얼들이 꽂혀 있었지만 모두가 영문판이 아니면 일서였다. 「니케이바이트」나 「PC매거진」과 같은 외국잡지도 다수 눈에 띄었다.

CAD실의 자랑거리는 싱가포르 컴덱스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2차원 CAD 「들 2.0」이었다. 들은 말레이지아·이집트·중국 등에 상당수 수출했으며 「오토캐드」보다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원들이 오토캐드를 「아토카드」로 발음하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도 일서의 영향이 매우 깊음을 알 수 있었다.

언어정보연구실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서가 곳곳에 중국어로 된 매뉴얼들이 많이 눈이 띄었다. 「조선어음성인식」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4만개의 단어를 지원하며 6만개까지 확장이 가능했다. 미리 음성을 녹음해놓았다는 의혹을 불식한다는 차원에서 대표단 중 송혜자 우암닷컴 사장이 직접 헤드세트를 쓰고 시험했는데 음성인식에서 가장 어렵다는 숫자도 척척 인식했다.

망구축실에는 후지쯔의 데스크타워 기종 등 몇대의 PC가 설치돼 있었는데 그다지 큰 역할을 하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15년 동안의 PIC 개발역사를 간직한 자료실에는 약 100여개의 디스켓 보관함 서가가 이채로웠다. 프로그램종합실은 각 연구실의 개발과정을 감리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최주식 총사장과 유일한 PIC 입사동기라는 39세의 여성이 근무하고 있었다. 음악창작실에서는 일본기업들로부터 수주를 받았다는 이동전화용 가라오케 프로그램을 개발중이었는데 남쪽에서조차 아직은 생소한 이 뜻밖의 작업에 대표단은 눈이 휘둥거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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