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취재기- IT가 희망이었네!>3회-평양정보쎈터 만찬

6일 오후 베이징을 출발하기 전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이 IT교류단 남측대표단에 새롭게 가세했다. 박 회장은 이번 대표단의 방북을 직접 주선한 인물이었다.

대표단을 태운 고려항공 일류신 62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것은 6일 오후 2시 10분이었다. 베이징 수도공항을 이륙한 지 1시간 15분 만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울 출발시간이 5일 오전 10시였으므로 평양까지는 실제 28시간 10분이 걸린 셈이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직선로로 230㎞ 남짓, 비행시간으로는 30∼40분 소요될 곳을 거리상으로, 시간상으로 빙빙 돌아온 것이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안착했을 때 『드디어 북쪽 땅을 밟았구나!』하는 정도 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방북을 준비하던 한 달 동안 이미 그 감동과 흥분을 만끽해 버렸기 때문이었을 터다. 다만 비행기 활주로를 달릴 때 창밖의 평양시민이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트랩에서 내리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강용철 참사, 민족경제협력련합회(민경련) 장우영 총사장을 비롯해서 북측 인사 5명이 공항 계류장까지 나와 우리를 환영했다. 남측의 공항시스템으로 본다면 출영객이 계류장까지 나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장우영 총사장은 지난해 7월 중국 단둥에서 만나 사흘 밤낮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다. 그는 『북조선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며 나를 와락 껴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순안공항 청사는 난방이 전혀 안돼 춥고 전등마저 거의 켜져 있지 않아 어두웠다. 입국장에 있던 일제 미쓰비시 히터의 컨트롤 패널은 조작을 할 수 없도록 별도의 알루미늄 잠금장치가 돼 있었다. 심사과정에서 대표단의 짐은 모두 샅샅이 조사됐고 휴대폰은 세관에 맡겨졌

다. 그러나 카메라와 캠코더의 반입은 허용됐다.

내 휴대품 가운데는 북쪽에 전해줄 전자신문 발행 2000년도판 정보통신연감 5권, 전자신문 1주일치 5세트, 전자신문 홍보팸플릿 50권 등이 여행용 슈트케이스 하나에 가득 들어 있었는데 이것이 집중 심사대상이 됐다. 짐을 찾는 곳에서 30여분을 승강이를 벌이다가 결국은 내용검토 후 숙소로 보내주겠다는 언질을 받고서야 일단락됐다.

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30㎞를 달려 도착한 곳이 숙소인 고려호텔이었다.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 있었다. 45층 쌍둥이 빌딩인 고려호텔은 객실이 500여개나 되는 평양에 단 두 개뿐인 특급(5성) 호텔이었지만 겉보기와 달리 내부는 어둡고 초라했다. 객실은 4박 5일 내내 난방장치가 가동되지 않아 옷을 몇 겹씩 껴입고 이불을 둘러써야 추위를 겨우 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후 7시부터는 북측이 주최하는 초청만찬이 평양정보쎈터(PIC)에서 벌어졌다. 남측 대표단 전원과 아태 및 민경련 고위관계자 그리고 PIC측 인사 등 모두 18명이 참석하는 중규모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만찬장소가 PIC 건물 내부에 있었다. 지상 3층 1200평 규모 PIC 본원 건물은 가운데에 큰 마당이 있고 천정은 유리로 덮인 ㅁ자형 건물이었는데 마당에 접해 있는 쪽의 2층에는 당구장·탁구장·커피숍이 있었고 반지하층에는 사우나 시설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직원이나 연구원용이라기보다 외부 사람들이 요금을 내고 이용하는 대중시설인 듯했다.

밤 11시까지 계속된 만찬은 화기애애했다. 다음날부터 시작될 밀고 당겨야 할 협상이 당장이라도 성사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IT분야보다는 통일과 민족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만찬이 끝나갈 무렵 장우영 총사장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처음으로 승인하신 북남 IT합작사업의 성공을 위해 건배!』를 외쳤다. 호스트인 PIC 최주식 총사장도 『IT교류를 통해 세계 제일의 민족임을 과시하자!』고 덧붙였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우리가 제안할 단둥-신의주 IT단지 조성사업에 대해 오히려 북쪽이 더 급하다는 사실을 예감할 수 있었다. 늦은 밤 숙소로 돌아온 대표단은 머리를 맞대고 북측과의 협상 전략을 새로 가다듬었다.

<서현진논설위원 jsuh@etnew.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