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지식의 공유와 재창조

◆고은미 기획조사부장 emko@etnews.co.kr

인쇄술이 발전하지 않아 말이나 문자로 지식을 전달하던 시절에는 소수의 특권층만이 지식을 접했고 지식을 유통시킬 수 있었다. 그때는 사회 전체적인 지식의 총량이 작았고 지식의 양도 그렇게 빠르게 증가하지 않았다.

60년대 복사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보와 지식의 양은 급격히 늘었고 손쉽게 유통될 수 있었다. 원본의 지식들은 복사실에서 원래 발행된 원본보다 더 많은 해적판들로 쏟아져 나왔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정보와 지식은 문자체계보다 더 생생한 멀티미디어 형태로 폭발하고 있다. 정보의 보고라는 칭송을 받는 인터넷에는 빠르게 오프라인상의 지적 창조물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디지털콘텐츠로 바뀐 그 지적창조물들은 몇 번의 클릭으로 너무나 쉽게 무한대의 복제와 유통이 가능해져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인터넷은 인간이 만든 지식전달 매체 중 가장 탁월하고 뛰어난 수단인 것이다.

처음 인터넷에 콘텐츠를 제공한 사람들은 정보의 건전한 공유를 원했다. 서로의 정보와 지식이 합해져 더 나은 지식을 생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어떤 분야에서는 지식의 생산자더라도 다른 분야에서는 더 큰 지식의 소비자일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는 빠르고 편리한 지식 공유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지적창조물, 흔히 인터넷콘텐츠라 일컫는 디지털 형태의 정보와 지식은 별 다른 죄의식없이 온라인상에서 마구 복제되고 무료로 유통되기에 이르렀다. 오프라인상에서는 당연히 대가를 지불하는 음악, 영화, 책 등의 예술 창작물들도 인터넷에 올라오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인터넷상에서 저작물에 대한 권리침해가 별 다른 제재없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진 것이다. 당연히 원작자들은 반발하기에 이르렀고, 이제 저작권법도 그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며칠 전 미국 연방 항소법원이 온라인 음악 사이트인 냅스터사가 가입자들에게 저작권이 있는 음악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 위법이라고 판결한 것은 저작권보호와 관련해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저작권이 강화될수록 인터넷산업은 콘텐츠가 중심축을 이룰 것이고 콘텐츠의 유료화도 가능해질 것이다. 콘텐츠의 유료화는 인터넷산업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정부도 콘텐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14일 문화부 새해 업무계획을 통해 디지털 문화콘텐츠 산업을 지식기반경제의 핵심산업으로 육성한다고 한다. 올 상반기중 자본금 2000억원 규모의 고품질 콘텐츠개발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콘텐츠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기 위해 콘텐츠 창작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지원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환영하며 반길 일이다. 다만 관 주도로 콘텐츠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게임, 애니메이션에서 전통민속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으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는 정책 집행과정에서 충분히 살피고 숙고해야 한다. 유용한 콘텐츠의 육성은 지식산업의 육성이며 사회 전체적인 지식의 총량을 높이는 바람직한 일이다.

가치있는 디지털 콘텐츠의 생성과 더불어 관심을 둬야 할 부분은 콘텐츠의 무분별한 불법복제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한 보호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한 불법복제 방지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더 확실하게 인터넷상의 지적자산을 보호할 전문 기술들은 끊임없이 연구되어야 한다. 어떤 저작권자가 자신이 애써 만든 지적자산을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는 공간에 적극적으로 공개하겠는가.

냅스터 판결을 계기로 지적창조물에 대한 권리가 강화되고 콘텐츠의 불법복제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다만 이번 판결의 여파로 자칫 다양한 시도로 이루어지는 콘텐츠의 개발 기술이 조금이라도 위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콘텐츠는 인간의 지적 창조물을 디지털 형태로 만드는 것으로 온라인상에서 건전하게 공유되어야 한다. 콘텐츠산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지식도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지금 지식은 숨가쁘게 생성, 유통, 재창조되고 있다. 지식의 총량이 많고 건전하게 유통되는 사회가 선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가장 강력한 지식 유통수단을 이용해 개인은 지식인으로 사회는 지식사회로 빠르게 변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인터넷이 지식의 건전한 유통과 창조가 보장되는 공간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