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플레이어의 시장 활성화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온 디지털음악 저작권 문제는 여전히 풀기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디지털음악의 저작권 문제를 함께 해결하겠다며 유니버설뮤직·EMI·BMG 등 음반메이저와 IBM·마이크로소프트·소니 등 전세계 유수 기술업체 200여개사가 의욕적으로 디지털음악표준화단체 SDMI(Standard Digital Music Initiative)를 만들었지만 발족한 지 4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가장 큰 문제는 디지털음악 표준안을 바라보는 참여업체간 이견. 보다 완벽한 콘텐츠 보호를 요구하는 음반사와 같은 사용자 입장이면서도 상호 경쟁관계에 있는 기술업체들간의 시각차가 공공연하게 회의를 지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지난해 10월 디지털음악 저작권보호표준기술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했던 워터마킹기술 공개테스트에서 후보기술이 모두 해킹을 당하면서 일각에서는 더이상 SDMI를 믿을 수 없다며 탈퇴하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SDMI는 새로운 후보기술들을 제안받아 상반기 안으로 표준기술을 선정하고 올 연말까지는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으로 수습에 나섰지만 그간의 과정에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반(反)SDMI 진영이라 할 수 있는 유럽과 일본업체들이 결성한 디지털음악표준화단체 STEP2000은 설립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속속 결과물들을 내놓고 있다.
STEP2000은 지난해 11월 1차 테스트를 통해 블루스파이크·마크애니 등 4개사를 표준후보기술로 선정하고 오는 4월 2차 검증을 통해 최종 선정된 기술을 표준기술로 내놓아 상용화시킨다는 계획이지만 음반메이저의 참여가 저조한 상황에서 큰 힘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따라서 디지털음악 저작권문제는 결국 콘텐츠 제작자, 즉 음반사들이 어떻게 입장을 정리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이같은 주장을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달 21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음반박람회 미뎀(MIDEM)에서는 세계 음반시장을 끌어가고 있는 음반사 및 관련 단체들이 디지털음악 저작권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 눈길을 모았다.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와 음반메이저들의 연합체인 국제음반산업연맹(IFPI)은 미뎀기간 동안 연석회의를 갖고 오는 8월까지 온라인상 음악 저작권을 관리할 국제기구를 설립하는 데 전격 합의했다.
이 합의는 지난해 세계 음악관련단체 관계자 및 음반사들이 인터넷 음악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미뎀넷」(의장 엠마뉴엘 리그랜트)이 「미뎀2001」 기간에 맞춰 개최한 정상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앞으로 음반사들이 직접 온라인 음악유통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특히 미뎀넷은 이 국제기구를 통해 온라인상 불법복제를 막는 저작권보호기술을 도입하고 디지털음악 표준형식을 만드는 등 유통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또 고부가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인터넷 음악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 보급해 관련 시장의 확산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 디지털음악의 확산을 저작권 침해라며 소송으로 맞대응해왔던 음반메이저 및 저작권단체들이 최근들어 전향적인 자세로 바뀌어 오히려 디지털음악산업을 앞서 이끌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극히 고무적인 일이다.
독일의 베텔스만그룹이 냅스터와 전격적으로 제휴한 것이나 EMI·소니뮤직 등이 직접 음악사이트를 구축해 서비스에 들어가는 등 일련의 움직임은 차세대 디지털음악산업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음반메이저들의 일련의 움직임은 CD기반 이후의 음악산업에서도 주도권을 쥐겠다는 패권주의가 짙게 깔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 음악사이트나 인터넷방송국을 개설해 오프라인 음반 유통의 보조 수단으로 삼는 것은 물론, 새로운 포맷의 음악매체에도 직접 대응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깊이 담겨 있다.
이에따라 음반메이저와 저작권 단체는 디지털음악에 관한 문호를 개방하지만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제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같은 상황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 「MP3 등 디지털음악시장 활성화를 위한 범업계 라운드테이블」이 음반사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아직까지도 디지털음악 저작권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대신 정부가 저작권법을 근거로 작사·작곡자들의 저작권과 가수·연주자들의 저작인접권은 신탁관리단체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에서 각각 이용허락을 받을 수 창구를 단일화시켜 이용편의를 도모하고 있으나 음반기획사 및 제작사들로부터의 이용허락은 아직도 개별적인 접촉을 통해 직접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국음반산업협회를 음반사들의 저작인접권과 관련한 신탁관리단체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일고 있으나 음반사들이 기득권만을 고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방법이 디지털음악 저작권 문제의 총체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결국 디지털음악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보완에 앞서 음반업계나 저작권자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오픈된 마인드로 상생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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