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의 현장을 가다>39회/끝-美 스탠퍼트大 야마모토그룹

◆양자연산·양자통신 기초기술팀

전세계에 정보화라는 거대한 변혁을 가져온 정보통신기술은 이제 국가나 기업 경쟁력 확보에 핵심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전자신문은 21세기를 맞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공동으로 정부나 기업들이 국내 정보통신기술 및 산업 발전을 위해 중장기적인 요구사항 분석, 이에 따른 기술변화 예측과 산업화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간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선진국 주요 연구기관을 찾아 현지 연구소들의 기술개발 현황 및 기술추세를 상세히 보도해온 「새천년리포트-첨단기술의 현장을 가다」를 오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미래 정보사회의 방패막이 기술로 일컬어지는 암·복호화기술은 야누스의 두 얼굴이다. 정보를 지키려는 자와 탈취하려는 자가 서로 강력한 암호화기술을 무기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지금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다. 만일 풀 수 없는 암호기술이 있다면, 또한 아무리 강력한 암호체계라도 쉽게 풀 수 있는 복호기술이 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아마 공상과학 속에서만 등장하던 정보전(information warfare)은 당장 현실이 될 것이다.

본지 취재팀은 양자컴퓨팅 연구개발 현장의 마지막 탐방지로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팅의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 스탠퍼드대 야마모토 교수 연구그룹을 찾았다. 야마모토 연구그룹의 활동이 특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양자컴퓨팅에 앞서 훨씬 빨리 우리앞에 상용화될 양자암호화기술의 단초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연구그룹은 스탠퍼드내 긴스턴연구소에 소재한 응용물리학 센터. 그들의 연구활동은 대부분 양자 통신과 양자연산 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기초 연구 성격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양자연산 과정에서 핵심 요소기술인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 기술을 전자계 및 광자계에 적용하기 위한 중시계 물리(mesoscopic physics)분야 연구와 반도체 광 미세공동(semiconductor optical microcavities 또는 semiconductor cavity QED) 기술을 응용하는 양자광학분야 연구다.

양자얽힘은 양자역학의 고유한 현상으로, 양자연산의 가장 큰 특징인 초병렬연산을 가능케 하는 근본 메커니즘이다. 양자얽힘을 고체내의 전자계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자가 파동성을 보이는 소위 중시적(mesoscopic) 환경이 필요하다. 중시적 환경은 마이크론 이하의 반도체 초미세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초저온 상태다. 야마모토 연구그룹은 갈륨비소 화합물 반도체를 특수 제작, 그 위에 금속 게이트로 초미세 구조를 구성했다. 이런 환경에서 전자들을 충돌시켜 발생한 양자얽힘 및 간섭(interference)현상을 관측, 고체 양자소자의 토대가 되는 기초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이 그룹에서는 지난 1999년 중시적인 이중장벽 p-n 이종접합구조의 단광자소자(single photon device)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50mK의 초저온이기는 하였지만 광자를 10㎒의 주파수로 하나씩 연속 생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소자는 중시 구조의 p-n 다이오드체계에서 전자(electron)와 홀(hole)이 쿨롱 봉쇄(Coulomb Blockade)현상에 의해 하나씩 관통한 후 결합해 빛을 내는 원리다. <그림7>

이는 마치 광자가 지하철역의 개찰구 회전문(turnstile)을 통해 하나씩 나오는 것에 빗대어 「단일광자 회전문장치(single photon turnstile device)」라고 명명됐다. 그러나 이 소자는 쿨롱 봉쇄효과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작동 온도가 매우 낮은 단점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출된 기술적 대안이 공동 시스템(cavity QED system)의 개념을 이용한 양자점 단광자원(quantum dot single photon source)이고, 현재 개발작업을 진행중이다.

공동 시스템(cavity QED)은 공동(cavity)와 원자(atom) 하나를 단위로 하는, 양자연산 하드웨어의 구성후보로 거론되는 시스템이다. 이는 원자를 광학적으로 단일모드(single mode) 크기의 공동(cavity)에 가두어 원자와 광자와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한 것으로 원자는 양자 메모리로 활용하고 광자는 양자정보의 수송체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이같은 개념을 토대로 원자를 반도체의 양자점(quantum dot)으로 대체하고 진공의 공동 대신 미세 식각한 반도체 구조를 사용해 광자를 하나씩 생성시킬 수 있는 반도체 단광자원(single photon source)을 제작중이다. 반도체 단광자원은 양자점과 단광자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컴퓨터 하드웨어의 중요한 구성요소일 뿐 아니라, 양자암호화(quantum cryptography)기술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양자 컴퓨터가 기존의 암호 체계에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전자 뱅킹시스템 등에 사용되는 RSA 공개키 암호화 방식은 큰 수의 소인수 분해가 어렵다는 수학적인 사실을 이용한다. 수가 커지면 커질수록 소인수 분해는 힘들게 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지난 1977년 MIT의 로널드 리베스트, 애디 샤미르, 레너드 애딜먼 세 사람은 64자리와 65자리의 두 소수를 곱한 정수를 바탕으로 암호체계를 개발했다. 자신들의 이름과 자릿수(64+65=129)를 결합한 RSA129 암호로 명명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내지 16년이 걸린다는 게 이들의 당시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난 1994년 1000여대의 워크스테이션들을 동원해 8개월 만에 암호를 푸는 데 성공했다.

그나마도 가능했던 것은 컴퓨터 성능의 향상과 소수 분해 알고리듬의 발전 덕택이었다. 따라서 RSA129 방식은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암호를 풀기가 용이하게 되어 제 역할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수가 커지면 커질수록 지수함수적으로 해독이 힘들어 사용하는 수의 자릿수를 늘리면 사정은 또한 달라진다. 예를 들어 1000자리의 큰 수를 사용한 암호(RSA1000)의 경우를 살펴보자. 1000대의 워크스테이션을 사용할 경우 RSA1000 방식의 암호를 깨는 데 현재는 1000만년이 걸린다. 앞으로 20년후 무어의 법칙에 의한 컴퓨터 성능 향상과 알고리듬의 개선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무려 4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보안성에는 문제없어 보인다. 하지만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5000여개의 양자비트(qubit:quantum bit, 양자컴퓨터 칩의 기본 단위소자)와 100㎒로 작동하는 양자컴퓨터 한대면 단 4분 만에 거뜬히 암호를 풀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가능성 때문이라도 많은 선진 연구 기관들은 양자컴퓨터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단행하고 있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현재 최선으로 사용되는 RSA 방식의 암호체계의 보안성 및 존재가치는 양자컴퓨터를 얼마나 늦게 개발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양자현상을 활용하는 양자정보처리 기술은 양자컴퓨터로 하여금 기존 암호체계를 무너뜨리는 반면 새로운 방식의 암호체계를 제공한다는 데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바로 양자암호화 기술이다. 이는 기존 수학적인 난해함이 아닌,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Heisenberg’s Uncertainty Principle)에서 기인하는 사실상 완벽한 암호체계다. 구성요소로서는 양자암호키를 보내는 송신측의 경우, 광자를 한 개씩 생성시킬 수 있는 단광자원(single photon source)과 편광자(polarizer), 그리고 수신측의 경우는 편광자와 단광자 검출기만 있으면 된다. 광자를 하나씩 생성시킨 후 편광자를 통과시키는 양자연산을 한후 수신측에 보내는 데 만일 도중에 도청을 하면 양자역학적인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광자의 상태를 변화시켜 도청 여부가 확실히 감지된다는 원리다.

현재 양자 암호화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양자컴퓨터와 달리, 구성요소 및 연산단계가 매우 간단해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 축적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양자정보분야의 기술중 상용화 시기도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원(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은 48㎞의 거리에서 광섬유망을 통해 양자암호를 보내는 데 성공했다. 또 공기를 매질로 0.5㎞ 떨어진 지상에서도 송수신에 성공하여 지상-지상, 지상-위성, 위성-위성간 양자암호통신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새너제이 앨런센터(Allen Center Bldg)=박재성 논설위원 j spark@etnews.co.kr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이성재 ETRI 원천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sjlee@idea.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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