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제대로 쓰자](3)냉정한 평가가 없다

지난해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는 국민총생산(GDP)의 2.8% 수준이다.

정부가 한해 과학기술부문에 쏟아붓는 예산 규모대로라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스위스 경영평가기관인 국제경영원(IMD)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규모(81억달러)로는 세계 10위, GDP대비 연구개발 투자를 기준으로 할 때 5위권이다.

그러나 과학기술부문의 국가경쟁력을 따져보면 42위권으로 처진다. 연구개발 투자가 늘고 있는데도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투자만 있지 제대로 된 성과가 없다는 얘기다.

21세기의 첫해인 올해부터라도 연구주체들이 「돈타령은 이제 그만」하고 제대로 된 연구개발에 나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평가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최종적으로 담당한다. 당연히 국과위 간사부처인 과기부가 주체가 되고 과기부는 산하 한국과학기술평가원에 모든 평가업무를 맡기고 있다.

여기에 산업기술평가원(산업자원부), 정보통신진흥원(정보통신부) 등 각 정부부처가 독자적으로 운영중인 평가기관만도 10개에 이르고 있다.

국가연구개발과제의 평가는 분야별로 평가위원풀에서 선정한 전문가 250여명으로 구성된 연구과제평가 소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평가단의 구성을 보면 외형적으로는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대부분 전공분야나 학맥에 따라 평가결과가 천차만별이다. 연구제안서나 연구결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보다는 평가위원의 전공과 관련된 개인적인 성향이나 학맥, 연구과제 책임자와의 인간적인 관계 등이 앞선 평가가 나타나기 일쑤다.

혼신을 다해 3년간의 연구결과를 내놓았던 서울대 K교수. 연구성과에 스스로 만족했던 그는 평가위원의 극단적인 평가결과에 더이상 연구의욕을 잃고 말았다. 전공분야 교수들은 A등급을 준 반면 자신이 전공과 거리가 있다는 출연연 연구원과 다른 교수들은 D등급을 줬다. 결국 평가결과는 C등급. 연구결과에 대한 시각차를 인정한다 해도 평가단의 평가결과를 당사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평가결과가 이렇다보니 중복과제를 가려내거나 연구과제의 옥석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내놓은 「주요 기술분야별 국가연구개발 예산 투자 현황」을 보면 전자·정보통신을 비롯한 5개 주요 기술분야에 모두 34개 정부부처가 관여해 있다. 과제당 평균 6.8개의 시어머니가 있는 셈이다.

이는 각 부처가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억지춘향이식으로 조금이라도 관련성이 있으면 연구의 효율성이나 연계성·지속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국가의 연구개발 목표와는 상관없이 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산업자원부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통해 새로 시작한 다목적 성층권 비행선 개발사업. 이는 과기부가 프론티어사업과제에 후보과제로 올려놨다가 사업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한 데 이어 정통부도 지난해 9월 성층권 통신시스템 개발과제로 이를 추진하려다 역시 타당성이 없어 포기한 사업이다.

특히 이른바 전자·정보통신 등 잘 나간다는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어 연구개발의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보면 과기부의 경우 전체 투자액의 69.5%인 542억원을, 정통부는 51.8%인 1789억원을, 산자부는 47.8%인 601억원을 각각 전자·정보통신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연구개발과제의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또다른 사례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해마다 예산배분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 대략 190여개 사업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개발사업평가는 사업규모나 시급성과와는 관계없이 연구결과에 따라 A·B·C·D·E 등 5등급의 상대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으로 당장 성과가 없는 연구과제의 경우 D·E등급으로 평가돼 연구예산 배분에 있어 차별을 받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 목표가 제대로 서고 국민의 혈세가 제대로 쓰이기 위해서는 평가를 위한 평가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평가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과학기술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과기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 연구개발 평가시스템은 하드웨어적으로는 사실상 완벽하다』고 말하고 『그러나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학연·지연에 얽매이는 고질적인 요인을 과학기술계 스스로가 걷어내는 소프트웨어적인 개혁과 혁신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했다.

출연연 K박사는 『현재의 평가시스템이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평가위원들의 평가결과를 정부가 최대한 보장하고 평가위원들 역시 냉정하고 공평한 심사에 나설 때 연구개발의 효율성문제는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모든 연구주체들의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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