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어요. 게임방요? 집에서도 할 수 있는데 뭣하러 가요.』(중1 허모양)
『집에 컴퓨터가 있지만 고물이라 인터넷이 안돼서 인터넷 하려면 게임방에 가야 해요. 그런데 용돈이 적어 1주일에 한 번 가기도 힘들어요.』(숭의여중 중3 김모양)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사는 중학생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다르다.
허양(14)은 유치원부터 컴퓨터를 접했던 터라 인터넷 세상과 매우 친숙하다. 교수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품에서 자란 허양의 집엔 펜티엄Ⅲ 컴퓨터가 2대나 있다. 초고속망이 설치돼 언제나 손쉽게 인터넷에 접속한다.
허양은 하루 평균 3∼4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는다. 숙제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게임을 하기 위해서다. 밤을 꼬박 새운 적도 많다.
허양은 정보 찾기에 매우 익숙한 듯하다. 『인터넷을 통해 인기 연예인에 대한 정보와 영화 및 음악·애완동물에 관련된 정보를 많이 얻고 있어요.』
허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용 PC를 갖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인터넷검색경진대회를 치른 적도 있다. 지금 다니는 중학교도 수준급의 컴퓨터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어 이번 방학을 이용해 컴퓨터 관련 자격증시험을 볼 생각이다.
남산골에 있는 숭의여중에 다니는 김양(16세)은 게임방에 가야 인터넷을 접할 수 있다. 집에 컴퓨터가 없는 것은 아니다. 3년 전에 구입한 486 컴퓨터다. 「윈도95」에 웹브라우저도 깔려 있으나 인터넷 서핑에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초고속망도 설치되지 않아 전화비 부담도 크다. 김양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동네 게임방이다.
김양은 보통 1주일에 한 번 게임방에 들른다. 두 시간 정도 인터넷 서핑을 한다. 주로 학교 과제물에 도움이 되는 사이트를 찾고 이따금 연예인 사이트도 뒤진다.
페이지도 만들고 싶지만 집에 있는 컴퓨터로는 힘든데다 게임방도 자주 다닐 수 없어 포기했다고 한다.
시간당 1000원인 게임방 사용료도 김양에겐 큰 부담이다. 식당일로 생계를 꾸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용돈으로는 학습교재 사기에도 벅차다.
인터넷을 학교 전산실에서 검색하면 되지 않을까. 『수업이 끝나면 전산실 문을 닫아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도 몇 대 안돼서 학교에서는 아예 인터넷 할 생각을 안해요.』
두 중학생에게서 보듯 정보화에 대한 접근정도가 소득격차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허양은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원활히 검색하고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으나 김양은 정보접근 자체가 힘들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 정보격차가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정보가 자산인 디지털 세상에서는 빈부격차에서 비롯된 이 같은 정보격차는 또 다시 빈부격차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잿빛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로선 정보격차가 빈부격차를 직접 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고급정보는 온라인을 통해 주고받지 않으며 상류층은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모든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사회가 오면 정보격차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것입니다.』(윤영민 한양대학교 정보사회학과 교수)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숭의여중에는 요즘 학생증을 발급받으려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최근 인근의 유네스코 회관에 가 학생증을 제시하면 두 시간 동안 무료로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은미 숭의여중 교사는 『컴퓨터 몇 대 나눠주는 것보다 무료나 저가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초고속통신망 가입자수가 400만명에 육박하고 인터넷 인구가 2000만명을 돌파했지만 정보화의 빛은 우리사회 곳곳을 비춰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에 따르면 농림어업·자영업·블루칼라 등 저소득층의 인터넷 이용률이 20% 정도다. 빈부격차에 따른 정보격차가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기업·공공기관 등에서는 채용시 정보자격증을 요구하거나 컴퓨터 활용능력을 시험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부와 함께 신분상승의 수단인 학력에서도 정보처리 능력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정보접근이 어려운 저소득층은 정보처리 능력은 물론 학습능력까지 떨어져 고소득층에 비해 학력을 높이기 힘들어질 정도다.
빈부격차에 따른 정보격차가 또 다시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윤영민 교수는 『저소득층은 정보소비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며 『정보격차가 빈부격차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는 하드웨어 보급 운동 수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정보를 이용해 생산을 끌어낼 수 있는 활용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급속히 디지털화하면서 정보능력에 따라 소속계층까지 달라지는 「디지털 카스트제도」가 생겨나고 있다.
<김성욱기자 swkim@etnews.co.kr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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