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583) 벤처기업

정경유착<19>

간부들은 나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말이 없다. 앞이 꽉 막힌 고집을 피우는 사장을 한심한 눈으로 보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내가 앞이 막힌 것일까. 증권을 조작하고 횡령을 하였던 회사 간부를 그가 회사 비밀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방임하는 것은 정당한 기업정신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당한 기업정신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얼마나 지켰는지 알 수 없다.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이제 그것이 나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다.

권영호 문제를 놓고 장시간 회의를 했지만, 해결점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회사나 나 자신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는 한이 있어도 권영호를 고발해서 의법 조치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회사 간부들은 모두 반대했다. 부사장 김진우가 권영호를 만나 담판을 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지만, 그것이 해결점은 아닐 것이다.

그후에 이 문제는 별다른 진전이 없이 흘러갔다. 부사장 김진우가 권영호를 만났을 때 자신을 고발하지 않는다면 회사에 위해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한 말을 들었지만, 그가 말하는 위해가 무엇인지 실체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미국으로 떠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김진우가 보낸 것은 아닐까 하고 그를 불러 물었지만, 자신도 출국하는 문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가 미국으로 떠난 후 모든 것이 잠잠했다. 금감원에서는 더 이상의 말이 없었다. 익명의 투서는 조사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더 이상 말이 없었고 진 국장 역시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원위치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창백한 얼굴로 나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그녀가 내민 한 통의 편지는 미국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발신인은 권영호였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이상한 어투의 글을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모든 인연이 끊어진 지금에 와서 내가 형수님에게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진실은 밝혀야 할 듯해서 몇 자 적어봅니다.

나는 그 동안 최 사장을 친형이나 다름없이 따르고 받들었습니다. 최 사장 역시 나를 아껴 주었습니다. 증권회사에 있는 나를 스카우트해서 창투사 간부로 앉히기도 했습니다. 나는 창투사를 위해 온갖 힘을 쏟았습니다. 1000억원의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을 해서 두 해가 지난 이제는 그 10배에 해당하는 1조원의 확장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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