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ADSL 장비업체들, 부품공동구매로 돌파구

「뭉쳐야 산다.」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모뎀을 제조, 대기업에 납품해온 A사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올해 가격협상을 진행하는 도중 대기업 측에서 대만산 제품의 원가를 보여주면서 이 수준에 가격을 맞춰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고민은 현재의 부품 조달 방식이나 생산비를 감안하면 그 원가에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수준이라는 데 있다.

또 ADSL 내수시장이 사실상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해외 진출에 조바심을 내고 있지만 이마저 번번이 대만 업체의 벽에 부딪쳐 고배를 맛보고 있다.

국내 중소 ADSL 장비업체의 이런 고민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부품 공동구매가 가시화되고 있다.

부품 공동구매는 대기업에 비해 「바잉파워(구매력)」가 뒤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부품을 구매함으로써 가격도 낮추고 납기도 앞당기는 협동구매 전략이다. 대만 중소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 가격이 국내 제조업체에 비해 저렴한 것은 인건비 차이도 있지만 이런 공동구매가 관례화됐기 때문.

국내 10여개 ADSL 모뎀 제조업체들과 한국네트워크연구조합(이사장 서평원)은 공동구매를 추진하기 위해 지난 10월부터 「ADSL부품 공동구매 컨소시엄」을 구성, 최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참가 회사로는 ACN테크·인터링크·텔레드림·단암·포비젼시스템 등 10개사가 확정됐으며 추가 참여 업체도 모집 중이다. 공동구매 컨소시엄은 다음달 초 업체들로부터 구매 물량을 조사, 그달 중순 1차 발주에 나설 예정이다. 우선적으로 추진되는 부품은 ADSL 모뎀에 장착되는 핵심 칩. 향후에는 커넥터·콘덴서·저항 등 모든 부품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으며 국내 부품업체가 생산하는 품목으로 우선 대체해 나갈 계획이다.

포비젼시스템의 최용일 사장은 『부품 공동구매가 이뤄지면 14∼20% 정도의 원가 인하 요인이 발생한다』며 『이 정도면 충분히 대만 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업체들의 부품 공동구매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7년께도 LAN카드나 네트워크 제품 생산과 관련해 공동구매를 추진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업체간의 이해관계·방법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져 결국 무산됐다.

공동구매 컨소시엄에 참가한 텔레드림의 김양진 이사는 『컨소시엄업체간에는 ADSL 모뎀이 국내 업체와의 경쟁이 아니라 대만 업체와의 경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이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며 『꼭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ADSL 모뎀 공동구매 컨소시엄은 다음달 대만을 방문, 대만 업체들의 노하우를 한수 배워올 계획이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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