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링컨의 대원칙

◆서현진 논설위원 j suh@etnws.co.kr

미국의 대통령이 오늘날과 같은 강력한 통치권을 갖게 되는 역사적 분기점이 바로 링컨의 재임기다. 링컨은 자신의 노예정책으로 야기된 동족상잔의 남북전쟁을 「하나의 미국」 건설로 승화시켜 낸 인물이다. 그가 「노예해방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하지만 링컨은 진정한 노예해방론자는 아니었다. 대통령 재임시 그는 적어도 노예정책에 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무소신과 말바꾸기로 일관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1861년 3월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수호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고, 노예를 해방시켜야만 연방을 수호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으며, 또한 일부의 노예만을 해방하고 나머지를 그대로 두어야 연방이 수호된다면 그렇게 하겠다.』

노예제를 인정할 수도 있고 폐지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가 「노예해방의 아버지」가 됐을까. 당시 미국은 노예제 폐지 여부를 놓고 기독교는 물론이거니와 휘그당·민주당 등 정파가 모두 남북으로 갈라지는 극렬한 분열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링컨의 정치적 기반인 북부에서조차 강경파·온건파·반대파 등으로 나누어졌다.

남북전쟁 직전 그는 노예제 폐지를 반대하며 연방을 탈퇴한 남부에 대해 즉각적인 군사대응에 나서 의회의 반발을 샀다. 반면 남부연합에 가담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연방에 충성을 서약하면 모두 사면하는 관용을 베풀었다. 이 때문에 그는 강온파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아 정치적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이들에 대해 여러가지 강온책을 적절하게 병용하는 전략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미국」을 수호하겠다는 대원칙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노예해방론자 이전에 그는 조국의 분열을 막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은 국가주의자로서 신념을 고수하고자 했다. 적어도 그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어디로 배를 몰아야 하는지를 알았던 위대한 항해사였다. 그가 배를 잘못 몰았다면 강력한 미국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적 찬사 그리고 덤으로 얻게 된 「노예해방의 아버지」라는 평가는커녕, 재임중 실권한 최악의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국내에서는 갑자기 IMT2000 서비스 개시 일정을 당초 일정보다 1년 이상 연기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연기론을 주도하는 쪽은 장비업계나 비동기식 시스템 개발을 주관하는 ETRI 등이다. 국산기술이 개발되기 전 서비스가 개시되면 수십조원의 장비시장이 몽땅 외국기업에 넘어간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나름대로 논리는 갖춘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연기론에 다시 한국통신과 SK텔레콤 등 비동기식사업자들이 묵시적으로 동조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두 사업자 모두 엄청난 선투자가 요구되는 IMT2000사업에 대한 불투명성을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 현 2세대 서비스 투자 회수에 대한 미련도 적지 않은 듯하다.

장비업계와 ETRI, 비동기식사업자 모두 총론은 같지만 각론은 서로 판이하게 다른 입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 사업의 추진을 관리 감독해야 할 정책당국의 입장이 문제다. 최근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당국은 이 연기론을 기다렸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당국은 지금 지난해 비동기식 심사에서 탈락한 한 기업을 설득하는 일과 추가로 3월까지 동기식 사업자 한곳을 더 선정해야 하는 복잡한 입장에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IMT2000 사업은 21세기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중대사업이다. 이에 대한 당국의 목표는 2·3세대 서비스간 그리고 3세대에서 동기식과 비동기식의 균형발전이라고 한다. 이 목표를 수행하려면 당연히 수많은 이해관계의 조정과 난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당국의 처지가 대원칙을 고수하려는 링컨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목표 달성을 위한 당국의 링컨적인 신념과 지혜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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