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좌담회>정택진단「e코리아로 가는길」

△일시 ● 2000년 12월 19일 오후 12시 30분

△장소 ●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칼톤룸

△사회 ● 곽수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대담자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

-변재일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장

-이상희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

-조환익 산업자원부 차관보

(가나다 순)

◆e코리아의 원년이 될 신사년(辛蛇年) 새해를 맞아 일선 관련업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정보화정책에 대한 관계당국의 비전제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전자신문사는 정보산업연합회와 공동으로 국내 정보기술(IT)분야는 물론 전통 제조업체를 대표하는 산업계를 비롯해 정관계 등 각계 주요인사를 초청, 신년특집 정책좌담회를 갖고 e코리아를 위한 정책과 그 대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번 행사에서 각 분야를 대표해 참석한 대담자들은 전자정부의 조기정착 등 「위로부터의 개혁」을 정책당국에 요구했으며 정부측 관계자들 역시 e코리아로의 성공적 진입을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과 독려를 아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좌담회의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편집자◆

-사회자(곽수일 교수) = 먼저 e코리아의 성공적 진입을 위해 우리의 현주소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보화 현황은 어떻습니까.

△변재일 실장 = e코리아의 기초 인프라인 초고속 정보통신망의 경우 2000년말까지 전국 광케이블망의 연결이 모두 마무리됩니다. 이는 계획보다 2년 앞서 이뤄진 결과입니다.

정보화에 대한 수요가 민간분야에서 빨리 일어난 원인도 있었지만 미래수요가 보장되는 분야에 대해서는 선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하에 과감한 투자가 선행됐기 때문입니다. 2000년 11월말 현재 초고속망 가입세대수는 354만명으로 우리나라는 인터넷 사용인구나 인프라적 측면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합니다.

-사회자 = 국가 디지털화는 어디쯤 와 있는 것으로 보시는지요.

△조정남 부회장 = 미국은 일찍이 93년에 국가정보화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정보

화에 다소 뒤처져 있던 일본도 지난 98년 「고도 정보통신사회 추진방침」을 발표하면서 무서운 속도를 내고 있지요. EU는 지난해부터 「e유럽」 프로젝트를 추진중에 있습니다.

앞서 인터넷사용인구나 인프라 등을 예로 들며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셨지만, 우리 산업계에서 보면 이것이 곧 경제생활, 즉 국내산업의 「e비즈니스」와 직결되고 있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경제활동의 중심세대인 장년층이 인터넷 사용인구에 대거 유입돼야 진정한 의미에서 인터넷 최강대국의 꿈이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고 봅니다.

△박용성 회장 = 동의합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이용 관련 통계는 현실과 괴리감이 있습니다. 경제능력없는 10∼20대가 PC방에서 하루종일 스타크래프트에 빠져있는 게 e코리아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수치상으로는 분명 우리는 디지털 강국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일선업체에 나가보면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당장 지방공단에 가보십시오. 지방 중소기업일수록 「인터넷, 해봐야 뭐하나」식의 생각이 팽배합니다.

-사회자 = 결국 아무리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도 정부와 민간 등 이용자층의 정보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인데요.

△이상희 의원 = e코리아로의 발빠른 진입을 위해서는 뭐니뭐니해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정부정책의 혼선과 부재가 e코리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일선업체의 호소를 자주 접합니다. 정부부터 전자정부로 변해야지요.

최근 정부가 내놓은 법안을 보면 행정자치부가 주무부처로 돼 있는 등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전자정부로 가동되면 행자부는 없어져야 될 부서 1순위로 꼽히는 부서입니다.

저 자신도 정부에 있어봐서 압니다만 한마디로 「중이 제머리 못깍는 격」입니다. 다시 말해 혁명적 개혁없이는 정부내 자발적 변혁을 기대하기란 요원한 실정이지요. 따라서 시민단체 등 국민의 직접적인 참여와 관심만이 정부를 움직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사회자 = 한 국가의 디지털화는 그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의 솔선수범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우리 정부내 고위공직자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합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인사체계로는 고위공직자들 중 국가정보화 전문가의 양성을 기대하기란 힘든 실정인듯 합니다.

△변 실장 = 이용인구통계는 국제적 기준에 의거, 객관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숫적인 측면에서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보화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e마켓플레이스를 비롯해 EC·CALS, CRM, SCM 등 미국 등의 서구환경 위주의 새로운 개념과 이론을 무리하게 국내시장에 적용시키려는 것도 시정돼야 할 것입니다.

일례로 우리 중소기업은 e마켓·ERP·ASP 등을 「뜬구름 잡는 얘기」 정도로 치부하는 게 현실입니다. 배너광고 역시 많은 인터넷업체들이 주수익모델로 삼고 있습니다만, 이는 광고시장이 폭넓게 발달한 미국시장에서나 가능한 수익원입니다.

무엇보다 e코리아 건설을 위한 정책수립의 시작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길이 무엇인가를 꼼꼼히 따져보는 자세부터여야 할 것입니다.

최근 유럽에서는 한국에 가서 인터넷사업을 하려는 벤처기업들이 들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인프라가 우수한 한국을 자신들의 사업모델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일종의 「테스트베드(test-bed)」로 삼겠다는 것이겠지요. 이미 초고속통신망 관련 기술의 70%는 국산화가 완료된 상태입니다. 이같은 환경을 십분활용, 우리도 세계시장에 적극 진출해야 할 때입니다.

△조환익 차관보 = 국부증진을 위한 e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해 지난 1년간 산자부는 전자상거래 보급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에 따라 제도적 기반구축, 인프라 확충, e코리아 인식제고 등과 같은 기반조성적 총론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봤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각 분야별 성과를 꼽아보면 결과적으로는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따라서 새해부터는 각종 e코리아 관련 정책의 주도권을 경제단체 등 민간으로 대폭 이양할 것입니다. 또 현재 9개 업종 e비즈니스 시범사업도 20개로 대폭 늘릴 예정입니다.

내년도 산자부의 e비즈니스 정책기조는 「수요자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적어도 새해에 한두가지 부문에서는 구체적이고 가시화된 성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의원 = 궁극적으로 e코리아 건설을 통해 우리나라가 부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와 경제의 정보화가 곧 외화획득과 직결돼야 합니다.

1조8000억달러의 세계 인터넷시장에서 미국이 1조2000억달러를 차지합니다. 언제까지나 봉제인형·자동차·반도체 등의 「약발」이 대미수출시장에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콘텐츠·솔루션 등 e코리아에 맞는 새로운 수출상품화 전략이 필요한 때입니다.

과거 산업사회때 규정된 현행 법체계로는 기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가치규범이 e코리아의 걸림돌일 수밖에 없습니다. e코리아의 법체계는 관리와 규제 중심이 아닌 「유도」와 「지원」이 우선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국가 구성원의 생각과 마인드를 바꾸는 건 교육의 몫입니다.

△조 차관보 = e코리아 관련 정책수립시 가장 우선 고려돼야 할 사항 중 하나가 「인력」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학제(學制

)는 일선업계의 수요에 발빠른 대응이 불가능한 시스템입니다. 정규교육이 못하면 비정규 사교육에서라도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 =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라 불리는 계층간·지역간 정보화 격차도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요.

△이 의원 = 얼마전 부산에서 열린 벤처기업 간담회장에서 그곳 벤처업체 대표 한분이 『부산에 본사를 둔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지방에 있다보니 서울 테헤란밸리에 위치한 업체보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인터넷시대에 지역간 정보불균형이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입니다. 인프라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들 합니다만, 그만큼 지역간·계층간 불균형의 골도 깊다는 반증입니다.

△사회자 = 지역이나 계층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결국 사용자

의 자발적 정보화 의지 여부에 달렸다는 것일텐데요.

△박 회장 = 정부가 비싼 돈들여 닦아놓은 정보인프라를 국부증진에 직결시키려면 약간의 강제성도 필요합니다.

일례로 얼마전 시내 한 유명백화점이 하청업체에 구매신청을 인터넷으로만 받겠다고 했더니, 이 백화점에 물건을 납품하는 모든 하청업체들이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인터넷을 모두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기업인들은 단순합니다. 정보화의 순기능이나 인터넷의 시대적 필요성 등을 애써 계몽하고 교육시키는 것보다 이를 통해 당장 눈에 보이는 실익이 생긴다는 사례 몇건만 보여주면 됩니다. 기업인은 기본적으로 장사꾼입니다. 돈된다는데 누가 안하겠습니까.

일선 산업현장내에 「정보화에 뒤처지면 당장 손해본다」는 식의 마인드 확산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정부와 대기업의 강력한 주도가 요구됩니다.

△조 부회장 = 정부나 대기업의 강력한 주도가 요구되지만, 또 그에 따른 확실한 반대급부를 일선 중소업체들에 안겨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정보화에 대한 일선 산업계의 반발만 사게 됩니다. 가혹한 「채찍」 뒤에는 맛있는 「당근」이 확실히 제공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회자 = 이같은 「당근과 채찍」 전략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정책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변 실장 = 현재 정부분야 조달은 모두 EDI를 통해 이뤄지도록 강제화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물건을 납품하려면 EDI를 쓰라는 유인책이죠.

하지만 우리 중소기업의 정보화 수준은 매우 열악한 수준입니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무턱대고 「e코리아 건설」이라는 미명하에 정보화로 내몰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최근 정부는 「위로부터의 정보화」를 우선 완성한다는 계획하에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는 전자정부의 조기구현을 위해 새해에만 200억원의 정보화촉진기금을 확보해 놓았습니다. 이에 따라 2002년이면 기존 민원서류의 50%가 전자문서화 등을 통해 사라져 매년 1조2000억원의 행정비용 절감효과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박 회장 = 얼마전 대한상의 회장에 부임한 뒤 상의내 모든 결제는 e메일 등 전자결제로 처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랬더니 『말단직원이 어찌 감히 회장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냐』는 등 내부반발이 만만치 않더군요.

전자결제가 이뤄지면 바로 직속상관은 물론 회장 등 모두에게 실시간 공유됩니다. 따라서 의사결정시간의 단축과 업무흐름 파악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바뀌지 않는 것은 의식의 문제입니다. 아날로그적 사고부터 깨는 것이 e코리아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사회자 = 정보화 대응에 우리 사회가 기민한 대응을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회를 놓치는 때도 종종 있다는 지적인데요.

△변 실장 = 온오프라인 서점간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마찰, 자동차·보험 등 각종 재화와 용역의 인터넷판매에 대한 이해세력의 반발, 은행간 합병 및 금융전산화 등을 통한 인력감축에 반발하는 해당 노조의 실력행사 등 e코리아의 성공적 진입을 위해 어느 선까지 기존 질서와 가치를 존중할 것이냐가 정부의 새로운 역할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금융서비스와 같이 온라인으로 급속히 대체되는 분야의 종사자들은 앞으로 더욱 거센 구조조정의 압력과 요구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지금과 같이 조직적 반발만 일삼는다면 e코리아의 장래는 암울합니다. 시대와 현실을 직시하는 혜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회자 = 소위 「굴뚝기업」이라 불리는 전통산업의 e비즈니스는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박 회장 = 의외로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사례」 몇개만 지속적으로 나오면 됩니다. 일선업체분들 생각에 「아, 그거하면 돈 좀 벌겠구나」하는 마인드가 확고하게 인식되면 쉽게 해결될 문제죠. 시대적 요구니 대세니 하는 피상적 얘기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전통산업 중소기업의 e비즈니스화가 그들의 이익에 직접 결부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정부와 대기업이 선도해 줘야 합니다.

△조 부회장 = 인센티브나 동기 부여가 중요합니다. 젊은층 사이에서는 인터넷 모르면 대화가 안됩니다. 또래의식이 강한 이들에게 이것보다 무섭고 큰 동기부여는 없습니다.

문제는 40∼50대의 실질적 경제연령층의 정보화입니다. 이들에게 실질적 인센티브가 가해지는 동기부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경제적 뒷받침이 되는 대기업과 정부 등이 앞장을 서줘야지요.

△사회자 = e코리아 달성을 위해 관련 인력양성 문제가 최근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조 차관보 = 실업대란 재연 등의 우려와는 달리 정작 e코리아를 선도할 전문인력의 공급부족현상은 현재 심각한 수준입니다.

지난 6개월간 산자부가 전국의 기업체와 정규교육기관 등을 상대로 실시한 「e비즈니스 인력수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새해에만 49만여명의 관련 전문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며 2002년에는 52만여명, 2003년은 54만여명 등으로 인력부족 현상은 계속 심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따라서 산자부는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각 대학이 전자상거래 관련 학과와 전공을 신·증설토록 적극 유도할 방침입니다. 이에 따라 새해에는 4개 대학원이 100명, 5개 정규대학이 828명, 13개 전문대학이 3290명을 각각 관련학과 및 전공 신설을 통해 모집할 계획입니다.

이밖에도 산자부는 업계·학계·연구소가 공동참여하는 「e비즈니스 교육과정 인증위」를 설치, 대학·사설학원·기업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교육프로그램과 강사진에 대한 인증사업을 실시한다는 방침입니다.

△변 실장 = 새해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급속히 전개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유휴인력이 대량 배출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들에 대한 전환교육프로그램, 비전공자 재교육, 대학내 관련학과 증·개설시 장비구입대금 지원 등의 대책을 마련중에 있습니다.

이용자 교육의 일환으로 40∼50대 등 장노년층 정보화 교육, 교도소 재소자 교육까지 정통부 주관하에 새해에만 예산 706억원을 책정, 각 부처에 관련자금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입니다.

△조 부회장 = 많은 기업이 IT인증 등을 통해 인사고가에 사원들의 정보화 능력과 마인드를 반영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조직내에서 정보화에 대한 분위기 쇄신이 중요한 때입니다.

△박 회장 = 정부주도의 정보화 관련 교육은 지나치게 기술위주의 IT중심으로 편향돼 있습니다. e코리아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포괄적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문이 「영어」 교육입니다. 영어는 이제 「인터넷언어」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프라를 자랑한다 해도 상호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면 e코리아의 세계화는 요원합니다. 우리나라의 콘텐츠와 DB의 국제화 및 세계적 표준화를 위해서는 IT 전문인력은 물론 일반 사용자들 모두 영어에 능숙해야 합니다.

<정리 =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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