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P장비업계 이대론 안된다]중-자생력 좀먹는 과당경쟁

「추후에 진행될 2, 3차 망확장 프로젝트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1차 프로젝트는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수주한다.」

통신사업자 및 일반기업들이 발주하는 프로젝트에 뛰어든 업체들의 「다부진(?)」 결심이다. 이는 시스템통합(SI), 컴퓨터통신통합(CTI)업체 할 것 없이 공개입찰에 참여하는 기업들 사이에 보편화돼 있는 관행이다.

문제는 덤핑경쟁으로 인한 경제적인 후유증을 감당하지 못할 소규모 벤처기업들까지 관행을 핑계로 출혈경쟁에 나서면서 파탄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모 업체는 국내 기간통신사업자가 실시한 솔루션 확장 프로젝트에 참여, 대기업과 승부를 벌이다 파격적인 가격을 무기로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미 구축된 솔루션은 막판 경쟁에서 탈락한 대기업 제품이었고 기존 솔루션과 확장 솔루션에 대한 연동기술을 지원할 것으로 믿었던 그 대기업은 팔짱만 낀 채 방관했다.

납기일에 쫓긴 낙찰기업은 결국 해당 대기업에 10여억원의 기술료를 지불한 후 연동 솔루션을 개발해 공급을 마쳤고 결국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회사는 그 여파로 지난해 4·4분기로 계획했던 코스닥 등록마저 차질을 빚을 만큼 위기에 봉착했었다.

인터넷전화가 무료통신의 꿈을 실현하는 통신혁명으로까지 비유되면서 지난해 초 5개 안팎이던 국내 업체수는 현재 10배 이상으로 급증했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기존 또는 신생업체 할 것 없이 국내 음성데이터통합(VoIP)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적 쌓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공서나 지자체, 기간통신사업자들이 실시하는 대형 프로젝트라면 사생결단의 의지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실시된 정보통신부, 서울시청, 한국통신의 VoIP 입찰경쟁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9월 실시된 정통부 부내전용전화망 구축사업에는 순수 국내 업체로만 구성된 9개 컨소시엄이 참여해 그 중 H사가 구성한 컨소시엄이 프로젝트를 따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계 장비업체들이 전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순수 우리기업이 프로젝트를 수주했다는 점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정통부가 예상한 공급가는 33억원이었던 반면, 낙찰 컨소시엄이 제시한 금액은 17억6000만원으로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얼마전 실시된 서울시청 민원서비스용 웹투폰 입찰에는 국내 5개 업체가 경합을 벌였다. 당시 서울시청 프로젝트는 총 30채널 규모로 작은 편이어서 예가는 3000만원 정도로 알려졌고 장비원가를 고려할 때 낙찰가는 1500만원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낙찰가는 지금까지 유래가 없었던 단돈 1원.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은 물론 입찰을 진행한 서울시청 회계과 공무원도 놀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연출됐고 결국 서울시청 프로젝트는 시장질서를 깨는 최악의 사례로 남았다.

VoIP 업계의 파격적인 덤핑경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8월 한국통신의 VoIP 프로젝트에는 국내외 VoIP 업체로 구성된 7개 컨소시엄이 참여해 성능시험평가를 실시한 결과, 1개 국내업체 컨소시엄과 2개 외국계업체 컨소시엄 등 3개 컨소시엄이 살아남았다.

그 가운데 국내 업체 컨소시엄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낙찰가는 19억9000만원으로 한국통신이 마련해 놓은 예산 55억원의 3분의 1 수준의 불과했고 예가인 30억원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낮은 초저가였다.

최근 1년간 연이어 실시된 관공서, 기간통신사업자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내업체들의 입찰행태는 기술력으로 우열을 가리는 건전한 승부경쟁이 아닌 「자신 있으면 따라와 보라」는 도박판의 베팅경쟁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국내 VoIP 업체들의 각골통한한 사고방식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는다는 막가파식 베팅경쟁은 내년, 후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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