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업자 및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의 투자여력이 크게 악화되면서 특정 장비업체에 장비공급권을 우선 부여하는 전제조건으로 외상, 분할납부 등의 금융혜택을 받는 이른바 벤더 파이낸싱 방식이 최근 들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벤더 파이낸싱을 제공하는 일부 해외 장비공급업체에서 이러한 방식의 장비공급이 통신사업자에게 장기적으로는 약보다도 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 논란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벤더 파이낸싱 방식의 협력을 이끌어낸 통신사업자측은 『칼자루는 수요처가 쥘 수밖에 없다』며 『자금난 때문에 피치 못하게 진행하고 있지만 불리한 조건으로는 계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벤더 파이낸싱 현황 = 루슨트테크놀로지스가 지난 6월 하나로통신과 1억2000만달러 상당의 벤더 파이낸싱을 제공키로 계약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시스코시스템스가 두루넷에 같은 금액의 벤더 파이낸싱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또 최근에는 모토로라가 두루넷과 40만대 규모의 케이블모뎀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벤더 파이낸싱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공급권을 수주했다.
하나로통신은 이외에 시스코와 2억달러, 알카텔과 3억달러 규모의 벤더 파이낸싱 협상을 진행중이며 연내에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조직을 대대적으로 보강하고 있는 노텔네트웍스는 최근 광전송 장비부터 벤더 파이낸싱을 제공키로 결정하고 대상업체를 선정한 데 이어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벤더 파이낸싱 프로그램을 운용키로 했다. 스리콤도 내달 국내 대상업체를 선정, 총 5000만달러에서 1억달러 규모의 벤더 파이낸싱을 제공키로 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연간 1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다국적 통신장비업체들은 올해 연말을 기점으로 모두 벤더 파이낸싱을 제공하는 셈이다.
◇왜 유행하나 = 우선 투자여건이 악화된 통신사업나 ISP들은 우선 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장비를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어차피 초고속 인터넷 사업이 당분간은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막대한 투자를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다국적 장비업체들은 벤더 파이낸싱을 고리로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통신망장비 부문은 운용체계 단일화 때문에 한번 장비를 공급하게 되면 지속적인 수요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도 수요처와 끈끈한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벤더 파이낸싱 이후 변화 = 벤더 파이낸싱은 우선 국내 장비업체에는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두루넷 케이블모뎀 공급권을 두고 모토로라와 경쟁했던 삼성전자가 파이낸싱 부문에서 밀려 장비 공급에 실패했다. 또 최근에는 기업이나 ISP 등으로 파이낸싱 요구업체가 늘고 있으며 규모도 대규모 물량에서 점차 소규모 물량까지 파급되고 있어 국내 장비업체의 어려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또 벤더 파이낸싱을 요구하는 업체에 득보다는 실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다국적 기업 관계자는 『벤더 파이낸싱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본사 파이낸싱팀에서 철저한 실사를 거치기 때문에 금융조건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벤더 파이낸싱을 통해 공급하는 제품은 본사 파이낸싱팀이 직접 관여하기 때문에 평상시 할인율이 적용되지 않아 현금 구매시보다 크게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장비가격은 경쟁여부에 따라 절반 이하 가격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하나로통신의 한 관계자는 『루슨트와는 8%, HP와는 그보다 조금 높은 이율로 벤더 파이낸싱이 이뤄졌으며 이는 회사채나 국내 은행을 통한 자금조달보다는 크게 유리한 조건』이라고 밝혔다. 또 가격 할인에 대해서는 『시장에서 적정가격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이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공급할 경우 구매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덧붙였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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