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통부의 오버

「아직도 시장논리보다 정부의 잣대가 우선하는가.」

4일 정보통신부가 주최한 「인터넷기업 가치평가 방법과 활용체제 구축」 세미나장에서 내내 기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정통부는 지난 7월 인터넷·정보기술(IT)기업 가치평가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골자는 이날 주최한 세미나를 시발로 닷컴기업의 민간 전문평가기구인 「가치평가포럼」 구성을 지원하고, 이를 추후 사단법인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또 부처 산하에 민관공동위원회를 설립, 일종의 평가인증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이고 있다. 취지는 역시 건전한 투자문화 유도와 안정적인 자금조달 기회 제공이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공식적으로 밝히는 정부의 역할은 단지 「지원」하는 데 그치고 있다.

기자가 의구심을 풀지 못하고 있는 대목은 크게 두가지다. 기업가치평가사업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영역인지 그리고 정부 개입의 불가피성을 인정할때 과연 「지원역할」은 어디까지인지다. 첫번째 의문과 관련해 이미 국내에서는 다수의 민간전문기업들이 기업평가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벤처열풍에 자극받아 증권·창투·컨설팅·기술평가기관 등에서 쟁쟁한 실력과 노하우를 갖춘 인력들이 포진해 유료 평가사업까지 펼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부 실무 책임자인 김호 과장은 『민간에서 제대로 평가역량을 갖추지 못해 정부가 나섰다』며 「사명감」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기존 평가사들은 『민간시장 영역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라며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두번째 의구심은 실제 구상중인 정통부의 복안이 공식발표와 사뭇 내용이 달라 더욱 우려스럽다는 점이다. 정통부와 사업기획단계부터 깊숙이 관여했던 모 평가기업 사장은 『가치평가포럼이 사단법인으로 발전하면 정통부 출연 투자조합 등과 연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라고 귀띔한 바 있다. 심지어 평가결과를 정통부의 정보화촉진기금, 재경부의 연기금 투자 등에 반영한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 부처의 「오버」와 일부 참여 평가기업들의 「욕심」이 합작품이 돼 민간평가시장을 호도하고, 닷컴기업들은 정부의 「공인」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될 상황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불과 2년 전 겪었던 IMF 충격이 「관치」의 틀을 벗지 못했던 국내 신용평가사들에도 일정정도 책임이 있었다는 사실은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시장논리를 도외시한 채 정부의 잣대로 미래가치를 중시하는 닷컴기업 평가사업을 이끌려는 정통부의 행동은 혹시 이 「교훈」을 망각한 발상이 아닌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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